2. 아이패드 드로잉
브런치에 글을 쓸 때면 함께 올릴 사진도 신경 쓰였다. 인물 사진은 얼굴을 가리기보다 그림으로 그리면 좋겠다 싶었다. 잘 포장된 글을 위해, 포장지도 이왕이면 내 손으로 꾸미고 싶었다.
사실 몇 년 전 아이패드 드로잉을 배운 적이 있다. 총 6번의 수업이었고, 매주 새로운 브러시 기능과 툴을 배웠다. 초심자다 보니 간단한 기술만 배우고 그대로 따라 해도 금방 결과가 달라지는 게 보였다. 문제는 그 이후에 따로 시간을 내서 스스로 그리진 않았다. 언제나처럼 내 아이패드는 다시 동영상 재생용으로 남겨졌다. 지금 다시 결과물을 보아도 내가 어떻게 이 그림을 완성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그곳을 찾았다. 이번엔 알려주시는 기능을 정리해 두기로 했다. 공책을 가져가서 배운 내용을 적었다. 덕분에 수업을 들으면서 몆 장의 인물사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 혼자 처음 그럴싸하게 그리고 나니 춤이 절로 나왔다.
이어서 구청에서 무료로 해주는 아이패트 풍경화 수업을 발견했다. 소수정원이었던 이전수업과 달리 대규모의 인원이었다. 선생님도 다르고 풍경화만 주제로 했는 데, 여기서도 배울 점들이 많았다.
그리기 전 단계에서 격자로 3단 구도를 먼저 잡고 시작을 한다. 사진을 찍을 때도 구도가 기초다. 조소도 마찬가지다. 사람 얼굴을 표현한다면 대략적인 큰 틀부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세세한 디테일로 들어간다. 처음부터 눈에 꽂혀서 그것에만 집중하면 나중에 완성하기 힘들다.
-> 수업에서 설계도는 지도안이다. 매 수업마다 지도안은 짤 수 없지만, 항상 수업목표, 힘주는 중심활동, 힘 더는 활동, 발문 같은 거를 주제에 따라 준비한다.
->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강의 뼈대를 먼저 생각하는 것 중요하다. 나도 첫 문장, 첫 부분의 디테일, 문장, 단어 하나하나도 너무 신경 쓸 때가 있는데 그러면 글이 잘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그림은 색 선택이라고 했다. 명도와 채도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색감각을 중요시했다. 타고난 감각과 관찰력도 있지만, 여기에도 기본적인 법칙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맨 앞은 진하고 선명하게, 멀리 있는 대상일수록 흐려지고 옅어지게. 명암을 넣을 때 색이 동떨어지지 않도록 선택하는 팁, 어색하지 않게 색을 조합하는 팁들이 있었다.
-> 색 팔레트에는 무한대의 색이 존재한다. 그냥 우리가 이름 붙인 무지개 색들도 명도와 채도에 따라 다 느낌이 다르다. 작품 톤에 맞는 색을 선택하는 것에 관하여, 그런 타고난 색감각을 키우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사진을 보든 직접 대상을 보든 세심한 관찰력을 통해서 이런 법칙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지켜야 할 법칙들은 기본적인 기술일 것이다. 그것들을 습득하고 그 외에 그 이상의 부가적인 것을 생각해 본다. 모방을 넘어서 나만의 작품을 나아갈 때, 관찰력을 키우고 나만의 색을 찾는 것을 어렴풋 상상해 보았다.
아이패드 드로잉은 브러시에 따라서 다양한 재료의 질감을 활용할 수 있다. 같은 대상도 재료와 표현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 오일브러시, 유화, 수채화, 색연필, 목탄 등의 재료 자체의 매력들, 여러 가지 표현 방식을 활용해 낯설게 독창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들이 생각났다.
글을 쓰거나 수업을 구상할 때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나의 아이패드는 그동안 내 집 식탁 위에만 있었다. 나도 밥을 먹으며 유튜브와 OTT영상을 볼 때만 찾았다. 몇 주간 이어졌던 드로잉 수업으로 드디어 아이패드도 집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후에 몇 개의 글에도 혼자 드로잉으로 필요한 그림을 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