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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 Oct 21. 2023

'오감'을 찾으러 갔는데...

3. 산림치유 프로그램

집을 벗어나 다양한 풍경을 보고 싶었다. 글을 잘 쓰려면 '오감'을 활용하라는 데 대체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느껴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혼자 무작정 산에 가기에는 겁이 났다. 이것저것 찾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있어서 신청했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한 번 가보고 반했다. 그래서 한 달반동안 4번 정도를 참여했다. 프로그램의 큰 틀은 비슷하지만, 세부 활동들은 때에 맞춰 달라졌다. 이런 세심한 구성도 눈여겨보았다.    

 

1. 아이스브레이킹 

산에 오르기 전 간단히 그날 모인 구성원과 친해지기 활동을 했다. 때때로 솔방울이나 막대처럼 교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체조, 막대를 이용한 스트레칭, 서로 눈 마주치기, 등 두드려주며 서로 마사지 등 

솔방울 주고받기, 혼자 솔방울 위로 던지기, 솔방울 씨앗 관찰하기 등


2. 오감 집중 프로그램

시각 : 여러 가지 나무, 식물, 새, 곤충들에 대한 설명 듣기

청각 : 한 사람씩 간격을 두고 걸으면서 소리에만 집중해 보기

후각 : 편백오일의 향, 혹은 시기에 맞는 자연의 냄새(예-6월의 밤꽃) 맡아보기

촉각 : 맨발 걷기

미각 : 차 마시기     


3. 호흡과 명상 

산속에 따로 있던 명상공간이나 등산 후 센터로 돌아와 호흡에 집중하는 활동을 했다. 

씽잉볼 명상, 두드리기, 털기, 확언 문장 말하면서 체조, 호흡명상 등     


내가 체험했던 활동들을 정리해 보았다.   

평소에 들리지 않던 소리들에 주의를 기울여보았다. 윙윙거리는 벌레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그런 나뭇잎을 파헤치는 새들, 새소리까지. 원래 있는 지도 몰랐는데 그제야 들렸다.    

  

나무들과 새에 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소나무는 씨앗은 어미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생존에 유리하다고 한다. 부모와 멀리 떨어져서 독립해야 더 큰 뿌리를 내딛을 수 있다는 자연의 법칙도 신기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생존하는 뻐꾸기, 남의 새끼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오목눈이새. 그들의 관계도 재미있었다.      


일주일 단위로 같은 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 사이 산의 풍경과 냄새가 확연히 달라졌다. 자연은 참 부지런하구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엄청난 시간이구나를 새삼 다시 느꼈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맨발 걷기다. 나도 처음 신발을 벗고 발을 디딜 때 어색했다. 땅마다 촉촉함의 정도도 까슬함도 달랐다. 자갈과 흙길을 지나기도 했고, 어느 구간은 하도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반들반들했다. 낯설었지만 평소에 맨발로 걸을 기회가 없다 보니 잠시나마 이렇게 숲 속을 걷는 것도 나름 좋았다. (요새 맨발 걷기 광풍이라고 하면서, 파상풍 위험 등의 뉴스를 보았다. 뭐든 과하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행이 되기 살짝 전에 갔던 5-6월의 숲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다녀오고 나면 그렇게 꿀잠을 잤다.   

  


오감을 깨우고 싶다, 글 쓰는데 활용하고 싶다는 욕망을 따라갔다. 그러나 글쓰기에 실제적 도움이라기보다는 산림치유 프로그램 자체에 몰입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왜 갔는지의 방향성을 잃고 그 자리에 푹 빠졌다. 좋은 걸 같이 공유하고 싶어서 친한 동생을 데려오기도 했고, 여건이 되면 부모님도 모시고 오고 싶었다. 그리고 평일에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새삼 감사했다. 내가 의도를 가지고 찾았지만 어느새 의도는 사라지고 그 활동 안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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