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와 함께 걷기

바람과 햇볕과 함께 걸으면서 기분 전환

by 김이울

2020년 올해의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코로나’ 일 것이다. 지난 1월 20일 한반도에 처음 상륙한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많이 변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이 보편화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세상이 되었다.

올여름 출간된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까이 있을 사람과는 가까이 있고, 멀리 떨어져도 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사회적 거리다.” 믿을 수 있는 사람, 만나도 되는 사람만 만나라는 얘기다. 코로나 시대의 생존법이다.


코로나와 함께 찾아온 것이 ‘코로나 블루’다. 불청객이다. 코로나 19의 유행에 따른 우울증을 의미하는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증)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성인남녀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블루' 관련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최근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절반 이상(54.7%(그렇다 40.7%, 매우 그렇다 14.0%))이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우울함과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 1위로는 '고립, 외출자제로 인한 답답함, 지루함'(22.9%)을 꼽았다. 2위는 야외활동 부족으로 인한 체중증가(13.4%), 3위는 주변 사람들의 재채기 또는 재난문자로 인한 건강염려증(11.7%), 4위는 소통단절에서 오는 무기력함(11.4%), 5위는 사회적 관계 결여에서 오는 우울감(11.2%) 등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로 인한 자살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르면, ‘코로나 블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운동과 생활습관, 충분한 수면,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 실내에만 있지 말고 집이나 사무실 주변의 공원과 도로를 산책하는 등 몸을 움직이고 기분을 전환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운동이다. 집이나 사무실 주변을 가볍게 걷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이 2년 전에 나왔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게 걷기다. 필자도 3년 전부터 걷기, 뛰기, 그리고 걷듯이 뛰기를 하고 있다. 10킬로 달리기와 하프 마라톤에 참가했다. 최근에는 구두를 바꿨다.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 없다면 딱딱한 구두를 신지 않는다. 캐주얼하고 밑창이 부드러운 구두, 검은색 운동화 등 편한 신발을 신고 최대한 많이 걷는다. 지하철을 한 정거장 걸어가서 타거나 한 정거장 미리 내려서 걸어온다. 그리고 교통수단을 바꿨다. 차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하철을 애용한다. 서울의 지하철은 편리하고 정확하다. 지하철은 운동을 하게 해 주고, 시간도 아껴주고, 음악을 들으면서 뉴스나 책을 보고, 스포츠 중계나 유튜브 감상을 가능하게 해 준다.

출퇴근의 부담이 없는 주말엔 더 멀리 더 많이 걷는다. 오후 5시에 출발하여 1시간 30분가량 걷는다. 오후 5시 전후의 햇살과 풍경은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보약 중의 보약이다. 살짝 기울어진 해가 눈의 부담을 덜어준다. 그 대신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더욱더 풍부하게 드러내 준다. 빛이 풍성하게 들어가므로 카메라에 찍히는 사진의 수준이 올라간다. 인물과 풍경이 멋지게 찍힌다.


오늘은 내가 나와 함께 산 지 20,451일째 되는 날(2020년9월27일)이다. 아름다운 초가을의 어느 하루, 1년에 며칠 없다는 최고의 날이었다. 바람은 잔잔하고 선선했으며, 하늘은 높고 구름 한 점 없었다. 나와의 오랜 동행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대공원 호숫가에 위치한 구절초 동산을 목표로 걸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집에서부터 왕복 1시간 30분 걸렸다.

9월부터 11월에 걸쳐 꽃대 하나에 커다랗고 탐스러운 흰색 국화 모양의 꽃이 하나 달려 있는 게 바로 구절초다. 안도현 시인이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지금부터 절교다.”라고 했을 정도로 구절초와 쑥부쟁이, 벌개미취는 구별하기 어렵다. 필자의 구별법에 따르면, 그 셋 중에서 가장 탐스럽고 우아하고 눈부시게 희고 큰 꽃이 구절초다. 자주색 구절초도 가끔 보이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은 흰색에 비할 바 못된다. 구절초는 눈과 코에만 봉사하지 않고, 약재로도 쓰인다.


키 큰 소나무와 잘 어울리는 구절초가 야산에 낮게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고고하고 우아하고 청순했던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이탈리아의 나라꽃인 ‘마거리트’와 흡사하다. 구절초의 아름다운 자태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으려고 무릎을 구부리고 앉거나 허리를 옆으로 비틀거나 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어느새 ‘코로나 블루’는 내 몸에서 사라지고 없다.

오늘은 내가 코로나와 함께 생활한 지 9개월째, 252일째 되는 날이다. 코로나 백신이 나오려면 2021년 여름은 되어야 할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득세하고 있다. 코로나와의 공존, ‘위드 코로나’의 시기가 오랫동안 이어질 거라는 얘기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일상의 새로운 루틴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건물 밖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걸어 다니는 것, 구절초처럼 안전하고 아름다운 것에 눈길을 주는 것, 무언의 대화, 무언의 사랑, 그게 바로 ‘위드 코로나’ 시대의 생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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