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체력

by 고요함

유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동경하는 멋진 사람들이 모두 꾸준히 헬스장에 다니고 있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꽤 웃긴데, 마치 드래곤볼 3개를 모으듯이 진행됐다. 악뮤 라이브 방송을 보다가, 수현 언니가 요즘 찬혁 오빠와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우아 아침마다 운동을 한다니.' 하고 생각 했고, 이슬아 작가님 강연을 듣다가, 글쓰기를 하려면 건강해야 하니 운동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맞지 맞지.' 동의를 했고, 홍나현 배우님 인스타 스토리에서 헬스장에서 만난 팬 분께 받은 책 선물 사진을 보고 '뭐?! 배우님도 헬스장에 다니고 있었단 말이야? 당장 나도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이 멋진 일을 오랜 시간동안 잘 해낼 수 있는 이유는 체력 덕분인 것 같았다. 지난 가을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운동을 하는 시간이 버려지는 시간이라 생각했고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지도 않았으니, 매일 새롭게 힘들었고 운동을 하면 할수록 더 지치는 몸에 실망하며 지금 내겐 운동보다 더 우선인 일들이 있다며 겨울이 오기 전에 헬스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다.



이번 여름에는 생각을 멈추고 내가 아는 멋진 사람들을 그저 따라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얇은 시집을 들고 런닝머신 위를 뛰고 걸었다. 하기 싫은 일 위에 하고 싶은 일을 덮어서 나를 속이는 전략이었다. 너는 지금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틀 정도 지나니 뛰는 것 자체가 재밌어졌고, 책을 내려놓았다.



나 같은 고집 센 사람에게는 '작심삼일'이란 말이 이상하게 작용한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에 순응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3일은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시작한 일주일은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다리에 알이 배기고, 팔이 안 올라가고, 등허리가 무거워져서 자려고 누우면 잠이 안오곤 했다. 그래도 작심삼일로 끝낼 수는 없어서 계속 헬스장에 출석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니 놀라울 정도로 몸이 가벼워졌다. 조금씩 강도를 높여 운동을 했음에도 온 몸이 아프지 않았다. 밤에 잠도 잘 왔다. 오월까지만 해도 혼자인 밤이 무섭고 슬퍼서 창문 블라인드를 다 내리지 않고 밝게 하고 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방이 밝은지 어두운지 신경쓰지 않고 잘 자는 사람이 되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날에는 자책감을 가득 담은 일기를 쓰곤 했다.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든 하루의 끝에 운동을 두니까 매일이 '그래도 괜찮았던 하루'가 되었다. 움직이고 땀 흘린 날이 되었으니까.



땀과 눈물은 흘릴 수록 좋은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 깊은 곳에, 바다처럼 깊어서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어딘가에 짜디 짠 아픔과 고통이 고여있지 않도록 꾸준히 땀과 눈물로 흘려 보내야겠다. 책에서 만난 누군가는 슬프거나 우울 할 때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더니 몇 달만에 건강해졌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지만, 그건 정말 정말 대단한 일이다. 며칠 전 나는 마음이 무거울 땐 몸도 무거워져서 운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생각을 멈추고 그저 뛰는 일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그는 눈물을 삼키며 땀을 흘렸거나, 둘 다 흘렸을 것이다.



운동의 목표는 멋진 일을 할 체력을 기르는 것이다. 체력이 생겼음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어 기쁜 요즘이다. 운동 하기 전에는 외출을 하고 나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필연적으로 머리가 아팠고, 내내 지쳐있다가 새벽에 나의 방으로 도착한 순간 머리가 씻은 듯이 맑아지고 지친 심신이 회복되곤 했다. 그저 바깥에서 기가 빨린 내향형 인간이라 그런 줄만 알았다. 운동을 하고 난 뒤로는 더운 날 2시간 넘게 산책을 하고 남은 일정들을 소화한 후 서울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하루치 체력이 새벽까지 방전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녀도 팔이 아프지 않고, 양반다리를 하지 않고 바른 자세로 오래 앉아 있을 코어 힘도 생겼다.



알바를 할 때도 느꼈다. 바쁜 건 똑같은데 몸의 체력이 생기니 마음의 체력도 생겼다. 조금 더 다정할 체력, 조금 더 부지런할 체력이. 몸을 돌보는 건 결국 마음을 돌보는 일이구나. 콘서트에서 응원봉을 2-3시간 내내 열심히 흔들고 나면 다음날 팔에 알이 배기곤 했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은 것도 난생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더 열렬히 응원할 체력도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일들을 멋지게 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체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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