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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Jan 09. 2021

오르가즘

그네

  10대 시절, 전신 마취를 해야만 하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유년시절부터 병치레가 잦아 소아과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가루약과 주사는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학교 수업 시간에 배가 너무 아팠다. 단순 복통일 거라 생각했는데 정도가 점점 심해졌고 양호실에 누워있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전화로 상황을 알려주셨고 바로 조퇴를 하고 자주 가던 소아과로 갔다. 소아과에서는 배를 눌러보더니 체한 거 같다면서 약을 처방해주었다. 약을 먹은 이후에도 차도가 없어서 다시 병원에 갔을 때도 의사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기절 직전의 복통을 경험하고 나서야 부모님은 나를 큰 병원 응급실에 데려가셨다. 몇 가지 검사를 해보더니 맹장염이라며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수술 후 병동으로 옮기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마취가 깰수록 점점 더 고통스러워져서 수술실에서 나온 그대로 누워있을 수도 없어 옆으로 돌아 누워있었다. 회복할 때까지 하루 종일 병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체력이 되었고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이유가 생겼다. 병실에 같은 반 친구들이 면회도 와주었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모님 지인들께서 꽃바구니와 과일바구니 등 선물과 함께 나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셨다.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이지만 몸에 크게 무리가 가는 수술은 아니었는지 회복이 빨랐다. 퇴원 후 일상생활에 아무 무리 없이 복귀할 수 있었고 체육시간에 피구와 발야구도 다른 친구들처럼 즐겼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심한 복통 뒤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멀쩡해지기를 반복했다. 부모님께 아프다고 이야기했다가 다시 괜찮아졌다고 이야기를 몇 번 번복하니 슬슬 꾀병이 아니냐고 의심하기까지 했다. 학교 수업시간에 배가 너무 아파 또다시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고 아픈 게 서러워서 육교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내가 너무 자주 아파 화가 살짝 난 것 같았고 짜증을 내며 아빠에게 전화를 하자 아빠는 회사에서 급하게 돌아왔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차에 타서 항상 가던 소아과에 갔다. 작년에 맹장수술을 했다고 하니 이전에 했던 수술과 관련된 거 같다며 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이번에도 의사는 진찰로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또다시 시간만 허비하고 수술했던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이전에 했던 검사들을 똑같이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고 몇 가지 검사를 추가적으로 더 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가게 된 곳은 산부인과였다. 응급실에서 산부인과 외래로 가게 되어 황당했지만 진료를 보기 전까지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진료실에 부모님과 함께 들어갔는데 대뜸 부모님은 모두 나가 달라고 했다. 모든 것이 당황스러웠다. 남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생리를 하냐고 물었다. 87년생인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일 때만 해도 그 나이에 생리를 하는 친구들은 전교에 몇 없었다. 나는 보통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리를 하지 않았다.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답변하자 자위를 하면서 오르가슴을 느껴봤냐고 물었다. 생리라는 단어는 서점에서 사춘기 관련 책을 사서 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는데 자위와 오르가슴은 책에 나오지 않는 단어였다. 오르가슴이 뭐냐고 되묻자 짜릿하고 흥분되는 느낌을 느껴봤냐고 풀어서 설명을 해주어서 놀이터에서 그네 탈 때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느낌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느껴봤다고 이야기했다. 의사가 조금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기에 상대방이 원하는 답변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답변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 이후에도 무언가 더 이야기를 했던 거 같은데 그때의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라서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사의 알 수 없는 말들과 나를 못 미더워하는 표정은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의사가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았으나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나가서 기다리고 아빠를 들어오라고 했다. 엄마와 나는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고 아빠만 들어오라고 하는 게 이상했다. 단지 배가 아파서 병원을 왔는데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알 수 없는 질문을 하면서 의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니 뭔가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한참 뒤 아빠가 진료실을 나와 엄마와 나를 불렀고 드디어 다 같이 모여 설명을 듣게 되었다. 오른쪽 나팔관 옆에 혹이 보이는데 지금 당장 수술을 할 수는 없고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있지도 못할 정도의 복통이라 병원에서 약을 하나 처방해주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약을 먹으니 진통이 싹 가라앉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나와 아빠에게 진료실에서 의사와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었다. 시원하게 답을 하고 싶지만 의사가 한 말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를 내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빠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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