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vvy Mar 04. 2024

제 강점은 커뮤니케이션 역량입니다

헉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얼마 전 CNBC의 기사에 따르면, 지금 채용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터뷰어가 되어 면접을 보면, 본인의 장점이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면접자"도 여러 번 되어 봤지만 "면접관"이 된 지는 20년이 넘었다) 대부분 주니어 연차들이었다. 

왜 그럴까. 조직 생활을 오래 할수록, 그리고 연차가 쌓일수록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이 결코 쉽지 않음을 뼛속 깊이 각인할 일들이 많아서 아닐까. 위에 링크를 걸어 둔 CNBC의 기사를 보더라도,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1. AI의 급부상 - 생성형 AI (gen AI)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학습 능력과 크리에이션 능력이다. 그래도 인간이 AI에 맞설? 수 있는 스킬은 커뮤니케이션일 텐데,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매우 다면적일 것이다. AI처럼 명령어를 1차적으로 이해하는 스킬이 아니라, 맥락과 상황을 읽어 내고, 그에 맞는 언어적 그리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조직의 일원으로서 조화를 이루어 성과를 내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2.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가 일반화됨 -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는 주 5일 근무체제로 돌아간 곳이 많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회사들의 경우 여전히 재택근무를 유지하거나 (사무실 유지 비용은 확실히 줄일 수 있으니) 주 2일 사무실 출근, 3일 재택근무 등으로 섞은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가 자리 잡았다. 주 5일이든, 풀 재택이든, 하이브리드이든,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달라진 것은 주효하게 바뀐 트렌드이다. 예전에는 이메일과 대면 미팅이 조직 소통의 툴이었다면 지금은 슬랙을 비롯한 업무용 메신저를 도입한 곳이 훨씬 많아졌고 이런 업무용 메신저에서 주효하게 사용되는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이나 구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또 다르다. 캐주얼하지만 또 마냥 캐주얼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친숙한 툴이지만 즉각성을 띄는 메신저를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thank you" 라도 정말 고마운지, 비아냥의 땡큐인지, 영혼 없이 하는 땡큐인지 상대방이나 맥락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용 메신저에서는 이모지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재택 근무자와 사무실 근무자, 동일 시간대에 없는 동료들이 섞여서 하는 화상-대면 하이브리드 미팅에서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필요하다. 콘퍼런스 콜로 조인한 발표자에게 대면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나 지금 정말 열심히 당신 말을 듣고 있어요'를 어떻게 어필할지, 그리고 화자에 따라 화면으로 대면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회의 내용을 기록하면서 다음 회의에서 팔로 업할 사항까지 정리하고 랩업하는 멀티 태스킹 +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요구된다. 

3. 5세대가 함께 일하는 시대. - 그렇다, 무려 5세대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기성세대 vs MZ 세대의 양분화 구도가 아니다. CNBC의 기사에서는 이 5 세대를 Traditionalist (the silent generation, 침묵의 세대, 1928-1945년 사이 출생자), 베이비부머 (Babyboomers, 1936-1964 사이 출생자), 엑스 세대 (X generation, 1965-1980 사이 출생자), 밀레니얼 세대 (Millenials, 1981-1996 사이 출생자) 그리고 젠 지 (Z generation, 1997-2012 사이 출생자)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무래도 침묵의 세대 분들은 다들 은퇴하시고 기업 오너나 정치인들 정도만 현역으로 하고 있으니 4세대가 함께 일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일 것이다. 어쨌든, 눈 떠 보면 바뀌어 있는 세상에서, 더군다나 빨리빨리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새마을 운동을 겪었던 세대와 한국이 세상에서 가장 힙한 나라인 것이 당연한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하루 8시간 이상 같은 목표를 갖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님은커녕,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형제자매, 선후배 간에도 소통이 안된다고 하는데 직장에서는 "도대체 왜 사무실에 나오기 싫어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세대와 "점심시간은 내 개인 시간인데 상사와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은 업무 외적인 부담"임을 입모아 얘기하는 세대들이 "회사가 돈을 벌도록 하기 위해" 소통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너무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팀이니까 무조건 회사에 모여서 일해야 한다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상사보다는 대면으로 일을 하는 것이 서로의 업무 효율을 위해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는지를 잘 설명할 줄 아는 상사. 윗사람이랑 밥 먹는 것이 싫은 티를 온몸과 표정으로 표현하는 후배 직원보다는 '저는 점심시간은 따로 개인 용무를 위해 사용하고 있어서 양해 부탁 드려요'라고 솔직하지만 예의를 지켜 커뮤니케이션할 줄 아는 직원. 어느 편이 더 조직에 도움이 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 일까.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다양한 "하위 기술"을 장착했을 때만 정말 채용 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자"임을, 어느 정도 조직에서 굴러 본 사람들은 알기에 면접 시 "저는 커뮤니케이션이 강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이들도 (나 포함) 주니어 때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고 생각했다가, 내가 생각했던 "커뮤니케이션"은 쌍방향이거나 조직의 소통 구멍을 메워주는 역량이 아니라 그저 내 의사를 야무지게 잘 표현하는 원웨이 커뮤니케이션이었음을 깨달은 뼈저린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AI에 대해서 사람들이 얘기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제 인간의 영역을 가져가고 있는 것은 코로나 이후 좀 더 가시화된 것 같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직업군이 가장 먼저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술용 로봇 같은) 


너무 뻔한 얘기겠지만, AI시대에 인간의 조직 커뮤니케이션 역량은 어떠해야 하는지 진짜 "뼈저리게"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상, 모든 것이 두려운 엑스 세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