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성공을 살아야 하는 한국 사회가 투사된 것일지도.
멀게는 약 25년 전, 서른 살도 넘은 지오디의 박준형이 연애하는 것으로 울면서 사과해야 했고. HOT멤버와 열애설이 돌았던 걸그룹 멤버는 섬뜩한 내용의 혈서 협박 편지도 받았던 시절. 만나려면 압구정 맥도널드 매장 밖 게시판에 메모 꽂아 놓고 만나던 '그땐 그랬지' 시절처럼, 아이돌의 연애도 케케묵은 옛날의 올드한 감성.. 이기는커녕 2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핫 토픽'이다.
새해 선물처럼 터트려지는 디스패치 발이 아니더라도 아이돌의 연애는 어마어마한 사랑과 시간을 투자하는 팬들의 단서 찾기로도 터트려지는 2024년.
얼마 전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이 열애를 인정한 후 카리나 팬들의 에스엠 사옥 앞 반대 시위(라기 보단 전광판 메시지 프로테스트?)와 웅성웅성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카리나는 팬들에게 자필 사과문을 썼다. 열애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팬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였다. 두 사람은 연애를 하며 법이나 사회 규범을 어긴 것도 아니지만, 카리나는 손글씨로 '미안하다'라고 사과한 것이다. 무엇이 미안한 것일까. 팬들이 실망하고 속상해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는데, 팬들은 왜 카리나의 연애에 실망했을까.
케이팝이 이제는 글로벌 음악 씬에서 하나의 큰 장르이고 팬덤도 크다 보니, 25년 전 아이돌 연애 때와는 급이 다르게 에스파 카리나 연애 및 사과문 소동에 전 세계 언론과 케이팝 팬들도 들썩였다. 팬들의 분노와 카리나의 사과문이라는, 외국인들 정서에는 이상하기만 한 상황에 대해 대부분의 분석은, 한국의 케이팝 씬 (아이돌이 중심인)은 아이돌 멤버들이 팬들에게 유사 연애 감정을 심어 주면서 활동하고 인기와 부를 얻기 때문에, 이 유사 연애 감정을 한 번에 깨버리는 '실제 연애'는 팬들에겐 마치 내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바람피운 것과 같은 심리적 충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아이돌들은 수상 소감이나 팬 미팅에서 자신의 팬들을 '사랑하는 대상' '내 여친' '내 남친'으로 부르고, 대부분 아이돌들은 팬덤에게 바치는 노래도 있다. (그리고 콘서트 때 팬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정말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것이다. 단, 1명과 몇만, 몇십만 명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점이 좀 특수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관점이 대부분이고, 음 그럴 수 있겠구나 싶을 수 있다.
그런데, 배우들의 연애에 대해서는 케이팝 아이돌에 대해서보단 관대하지 않은가? 이번 주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배우들의 환승연애 건만 봐도 (물론 이들은 나이도 20대 후반-30대 초반이지만), 이들이 외국에도 많은 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반응은 '팝콘각' 구경이다. 처음 연애를 공개했을 때도 전직 아이돌 출신 배우와 배우의 만남이었고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나이들이었음에도 연애 자체에 대한 물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팬덤의 사랑이 그저 그런 레벨은 아니다. (물론 아이돌 팬덤 문화와는 몰입도 자체는 다르지만)
내 생각이지만, 이렇게까지 아이돌의 연애 자체에 실망하고 화를 내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투사된 것 아닐까?
현재 케이팝 아이돌판은 갈수록 팬덤의 초기 "열정, 시간, 자본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 연습생 시절부터 그들을 지지하는 팬덤은 그룹이 데뷔하자마자 공기계 수십대를 올려가며 시간을 쪼개어 스밍하고, 팬미팅에서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플레이어도 없는 씨디 수백 장, 많으면 수천 장을 사고, 내 아이돌의 성공을 위해 기회가 될 때마다 '영업'을 뛴다. 아이돌 멤버의 생일이나 싱글 발매일이 되면 팬 카페에선 "총공"을 결의한다. '내 아이돌 (내 새끼)'을 차트 1위나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인이라면 기시감이 있지 않은가? 내 자식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좋은 학원 들어가기 위한 정보를 모으고, 학원 등록 위해 줄을 서고, 과외비 학원비를 대기 위해 부업을 하고, 다 쓰러져 가는 집이라도 대치동으로 어떻게든 이사 가는 한국의 교육열. 그리고 그런 교육열 속에서 자라 온 한국인들.
말하자면, 팬들은 "내가 널 위해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너는 한 눈을 팔다니" "지금 분 초를 쪼개서 연습하고 스케줄해도 세계 정상을 차지하지 할까 말까인데 너는 딴짓을 하다니" 이런 마음에 실망하고 화가 나는 것이 아닐까.
자식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마트에서 고생스럽게 알바까지 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오니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사야 하니 돈 달라는 자식을 대하는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대학 입시를 위해 경험을 유예하고
취업을 위해 연애를 유예하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결혼을 유예하는 한국의 젊은이들.
그렇게 많은 것을 유예하면서, 어찌 보면 내가 이루지 못한 성공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며 스밍에 열 올리고 있는 팬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돌에게 너무 서운한 마음이라 그렇지 않을까.
케이팝 씬이 이렇게 "충성 팬덤" 위주로 지탱되어 온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싶다.
이상 오늘의 나 혼자 생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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