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모자란 사람이었나"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심리학에서만 쓰이던 용어인 "가스라이팅"이 요즘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가스라이팅"의 사전적 의미를 chat gpt에 물어보면 아래와 같이 답하고 있다.
"가스라이팅"의 사전적 의미는 정신적인 조작 또는 제어를 통해 다른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용어는 또한 믿고 있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자신의 혹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부정하거나 변형하여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정신적인 학대의 형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가스라이팅"이 자신을 믿는 타인을 조정하고 그 사람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형태라는 표현으로 굳어진 기원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알고 있겠지만 역시 chat gpt에 물어보니
"가스라이팅" 용어의 기원은 1938년 미국의 작가 피트러스 패트머슨(Patrushev)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소설 "Gas Light"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남편이 아내를 조종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남편이 집의 가스 조명을 약하게 켜고 끄는 것을 아내가 인식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설 내용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에게서 혼란을 줄 수 있는 행동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고, 이 용어가 "가스라이팅"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가스 조명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아내는 사실대로 인지하고 있는데, 남편은 계속 조명 밝기에는 변함이 없는데 아내가 이상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통제함으로써 아내가 결국 "아 조명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내가 잘못 인지했구나"라고 여기게 되고 더욱 남편에게 의존하며 남편이 평가하는 자신을 본인이 평가하는 자신보다 더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는, 무서운 얘기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쉽게 통제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면이기도 하고.
'가스라이팅'은 아무래도 통제하고자 하는 사람이 행사하는 행위이다 보니, 지금까지는 주로 연애관계에서 언급이 많이 되어 왔다. 남녀 상관없이 (또는 남남 녀녀 상관없이) 관계에서 통제욕구가 높은 사람이 의존성 (또는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믿도록 만들기 위해 여러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그건 네가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 반복적으로 주입하면,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반발하다가도 '어 정말 내가 그런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조직 내에서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 중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이 '조직 내 가스라이팅'이다. 아무래도 이런 현상에 대해 좀 더 소리를 내는 서구에서 다루기 시작한 현상인데, 이 중심에 Mita Mallick이라는 diversity & inclusion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가 있다.
Mita가 조직 내 가스라이팅에 대해 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칼럼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Mita 가 가스라이팅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조직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할 시 (특히 그 의견이 보스의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반대 의견일 시), 보스가 (그리고 조직이) 그 사람을
- 저 사람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야
- 저 사람 뭔가 튀고 싶어 안달인 사람이야
- 저 사람은 싸움닭이야
- 저 사람은 회의 시간에 발언을 너무 많이 해
- 저 사람은 불만투성이야
등등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가스라이팅이라고 Mita는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회의에서 내 의견을 주장하고 나서 위와 같은 피드백 또는 평판을 받아 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동북아 정서상, "싸움닭" "혼자 튀려고 한다" "발언을 너무 많이 한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바로 '아 내가 정치를 못하고 내 주장만 너무 내세웠구나'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Mita Mallick 은, 깜냥이 부족한 보스나 동료들이 (즉, 자기 의견을 여럿이 있는 회의에서 발언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른 이의 행동과 발언에 상처를 받은 것을 가스라이팅으로 푸는 것이니 ('회의 시간에 다수의 의견을 따르고 가급적 입을 다무는 것이 맞다'는 주장으로) 이들의 비뚤어진 바이어스가 나의 의견과 생각을 컨트롤하도록 두지 말라는 것이 Mita의 어드바이스이다.
분명히 나는 이번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를 팀원들 및 다른 부서의 실무진들에게 의견을 미리 취합한 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팀장님은 이건 이미 정해진 것이니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최종 그림만 전달하고 그 그림을 도출해 내는 방법과 여정에 대해선 그림을 그려 주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겪어 왔다. 지금 팀장인 사람들도 실무진이었을 때 겪었던 상황들이고 지금도 많은 조직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조직 또는 윗사람과 반대되는 의견을 - 비록 결과가 좋지 않을 확률이 있더라도 - 용감히 개진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런 환경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Mita Mallick 이 이에 대한 칼럼과 포스팅을 여러 건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외국의 회사들도 '보스에 반대하는 나의 의견 개진' vs '순응하여 자리보전'의 내적 갈등에선 자유롭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순응하여 자리보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신을 각인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윗사람 의견을 따르는 것이 맞다'도 하나의 의견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조직이라는 것이 어차피 소수의 튀는 생각들만으로 매번 모험을 할 수는 없고 리스크를 매니지해야 하는 당위성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직 내 가스라이팅의 위험성은,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내가 정말 틀렸나' '내가 정말 부족한가' '다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나는 이곳에선 루저인가'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
소수의 의견이든, 반대하는 의견이든, 건강하게 서로 의견을 개진하며 합리적으로 도출한 결정에 대해서는 반대한 사람들도 반대했던 것을 접어 두고 하나의 목표로 함께 드라이브하는 조직.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만하지 않을까.
이상 오늘의 허접한 생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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