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를 타고 오시는 분들,
보행기에 의지해서 오시는 분들,
지팡이를 집고 오시는 분들,
뒤뚱뒤뚱 어떻게든 걸어오시는 분들,
들어오시자마자 가뿐 숨을 몰아 쉬는 분들,
힘들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쉬시는 분들,
오실 때는 제대로 걸어왔는데 가실 땐 어지럽다면 제대로 걷지 못하시는 분들,
당이 떨어졌다며 사탕이나 믹스커피 같은 거 있냐고 찾으시는 분들,
세상엔 의외로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
같이 21세기를 살면서 보지 못하는 세상의 단면들이 참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편한 것이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을 마주치면 마음으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언제였던가 어떤 어르신이 은행에 왔다가 일을 보고 어지러워서 집으로 가야 되는데 기력이 떨어져서 못 걷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택시를 잡아주려고 했는데, 가게에 집열쇠를 두고 와서 가게 문을 닫고 가야 하는 상황인데 가게까지 갈 수 있는 기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고민을 했다.
그 어르신은 지금 현재 위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119를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궁리한끝에 인근 파출소에 연락을 했다.
"어르신이 몸이 안 좋아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집열쇠를 가지러 가게까지 갔다가 집으로 갈 수 있는 기력이 없어서 좀 데려다주시면 안 되겠냐"라고 전화했더니 파출소에서 흔쾌히 와 주셨다.
어르신이 혼자의 힘으로는 똑바로 서서 걷지를 못하시자 경찰분들도 당황해서 119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두 분이 부축해서 모셔갔다.(감사한 분들이다)
최근에 어떤 할머니는 은행에서 볼일을 보고 걸어가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집이 멀어서 그런지 길가에서 택시를 잡는데, 일하며 왔다 갔다 하다가 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도통 택시가 잡히질 않는다.
물론 빈택시도 없었겠지만 요즘은 카카오택시 등으로 나이 드신 분들은 택시 타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결국에 그 할머니는 길바닥에 앉아서 20분 정도를 기다리다 택시를 타고는 가셨다.
우리 엄마 같아서 안쓰러웠지만 마음뿐이었다.(그때 왜 나가서 택시를 잡아주지 못했을까)
이렇게 눈에 보이는 불편함은 어떻게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동정심이 간다.
그렇지만 세상엔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은행 안으로 들어와서는 똑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고 더듬거리면서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하시는 등 무엇인가 어눌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사람을 경계하고 피하고,
이처럼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애가 있는 분들은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다.(사실 실무적으로는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물론 마음의 장애들도 신체적인 장애처럼 외관에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외관상으로는 몰랐는데 말을 해보면서 마음의 장애가 있는 것을 아는 경우도 있다.
사실 장애라는 것이 그렇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뜻하지 않는 사고로 신체적인 장애를 입는 경우도 있고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신체에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일을 겪거나 심한 정서적 충격으로 정신적인 장애를 겪는 경우도 있다.
은행에 오시는 분들 뿐 아니라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장애라는 이유로 상대방에 대해 편견을 가지거나 그 사람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나에게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세상에 장애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나 스스로도 신체적인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불안, 초조, 공포 등 알지 못하는 장애를 느끼며 살고 있다.
불편한 사람들이 말하는 신체적 장애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내가 극도의 심한 정신적 장애를 겪어보지 못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다름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다른 신체, 다른 마음
나는 남들과 다름을 지닌 신체, 나는 남들과는 다름을 간직한 마음
아, 나는 지금도 너무 쉽게 말을 한다.
장애도 모르면서, 불편한 것도 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