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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

(문 내리고 오시는 고객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

4시가 조금 넘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려 나가 봤더니 돈 찾으러 왔는데 안 나온다고 우시며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신다.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며 밖으로 나가 확인해 보니 입금한 지 30분이 지나지 않아 인출이 안 되는 것이다.(보이스피싱 예방 차원에서 100만 원 이상 입금 후 자동화기기를 통한 30분 지연인출제도)

매일 두 분이 같이 오셔서 할아버지가 카드로 돈을 찾고 그랬었는데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신다.

할아버지가 혈액을 투석해야 해서 병원비중 일부 결제를 하기 위해 급하게 돈을 찾으러 왔는데 인출이 안되어 서글피 우는 것이었다.

업무시간은 지났지만 내가 도와줘야 한다.

지연인출제도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 나서 밖에 서서 30분을 기다리시게 하기가 그래서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게 해 드렸다.

가슴에는 병원 방문증을 패용하고 있었다.

아마 돈을 찾아 병원으로 또 가셔야 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때 공교롭게 우리가 주문한 피자가 왔다.

난 순간 당황했다.

황급히 피자를 받아 들고 다른 직원한테 건네주고 할머니에게 시간이 거의 다 됐으니 밖에 나가서 한 번 해보자며 모시고 나갔다.

사실 시간은 아직 30분이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주문한 피자가 걸렸다.

어찌 보면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는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피자를 주문해서 좋아하며 먹는 모습은 보여주기가 싫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은 30분이 지나지 않아 인출은 되지 않았다.

" 이상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할게요" 라며 머뭇머뭇하다가 30분을 다 채우고 나서야 현금 인출을 도와주었다.

두 분이 은행에 오실 때는 그렇게 다정한 모습은 보지 못했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자동화기기에서 현금인출을 도와주는 걸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 이제 어떻게 하냐"며 자꾸 눈물을 글썽인다.

같이 다니며 의지하던 사람이 지금 옆에 없다는 설움 때문일까,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서일까,

바라보는 나까지 왠지 서글퍼진다.

내가 무슨 도움을 줄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할 수 없는 말이기에 다 잘 될 거라며 기운 내시라고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나에겐 최선이었다.

당신께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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