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장에서 큰 소리가 났다.
"아니, 뭣들 하는 거야, 직원들은 번호가 지났는데도 처리해주지 않고, 지금 당신들 뭐 하자는 거야"
어떤 여성 고객이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번호가 지났는데도 처리해 주지 않고 다른 손님을 처리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까 그 고객이다.
오시자마자 번호표를 뽑아줬는데 너무 사람이 많다며 다른 번호표를 한 장 더 뽑아가지고 기다리고 있던 고객이다.
앉아서 기다리면서도 이 은행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냐며 계속 불만을 얘기했던 고객이다.
처음부터 신경이 쓰였던 고객이었다.
나도 바쁘게 왔다 갔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고객들 업무를 도와주고 있다 보니 번호가 지난 걸 챙기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일차적으로 번호의 순번은 고객들 스스로가 챙겨야 하는 것이다.
조금 전에 그 고객이 신경질을 내며 누군가 통화를 하면서 바깥으로 잠시 나가는 것을 내가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당신의 번호표 2개의 번호가 다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잘못은 고객한테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번호를 두 번 누르거나 한 번 눌러서 오지 않으면 번호를 호명하면서 한 번 더 누른다.
그렇지만 그 고객은 당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 직원의 잘못만 따지는 것이었다.
당신들은 지난번호도 제대로 처리 못하면서 이따위로 일을 하냐며 우리의 잘못으로만 계속 몰아가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나는 한마디 했다.
"고객님께서 아까 전화 통화하면서 밖으로 나가시지 않으셨냐고, 그래서 고객님이 번호를 놓친 것을 직원들이 어떻게 그걸 일일이 다 체크하냐"라고,
그 고객은 반문하며 따진다.
"내가 아까 전화하면서 나가는 걸 봤으면 쫓아와서 번호가 나왔다고 당신이 불렀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아니 내가 당신 번호가 몇 번인지 어떻게 알고 전화하는 당신을 따라나가서 부릅니까? 당신이 번호를 나한테 얘기해 주고 잠깐 통화하고 온다고 얘기하고 나갔으면 당연히 제가 챙겨드리죠"
객장이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그 고객의 번호가 몇 번 인지도 모르면서 쫓아나가서 지금 부른 번호가 당신 번호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당신 번호를 부르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는 한 번호를 최소 두 번 이상 누르거나 호명을 합니다"라며 재차 설명을 했다.
그 고객은 그게 사실이라면 CCTV를 돌려보자며 계속 소란을 피웠다.
너무나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지만 단호하게 얘길 했다.
"번호가 지난 것은 지난 거고 고객님이 체크를 못한 건 못한 건데 왜 직원한테만 잘못을 다 떠넘기시냐고, 직원이 무조건 다 잘못한 것처럼 그러시냐고, 고객님이 전화를 받기 위해서 나가신 거는 고객님한테도 잘못이 있는 거 아니냐고, 당신이 번호표를 뽑았으면 당신의 순번은 당신 스스로가 챙겨야 되는 게 맞다고, 당신의 잘못도 인정하면 저희가 도와주는데 당신은 우리한테만 잘못을 다 뒤집어 씌우며 소란을 피우는데 누가 당신을 도와주겠느냐고" 항변을 했다.
고객의 언성과 나의 언성이 커지면서 객장이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나는 이 무례한 고객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 무례한 고객이었다.
그러자 팀장님이 나오셔서 이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그 고객을 모시고 금방 업무가 끝난 다른 창구로 가서 업무 처리를 해준 것이다.
당신이 소란을 피우지 않고 번호가 지났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어왔으면 나는 아무런 문제 없이 다음 순번으로 대기해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당신을 도와줬을 것이다.
나는 그 무례한 고객을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 흥분한 나머지 그 고객보다 더 큰 톤으로 지점이 떠나갈 듯한 소리로 그 고객에게 항변을 했다.
이런 무례한 고객은 그냥 순응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피가 거꾸로 용솟음쳤다.
내가 1년 넘게 계약직으로 일을 하며 핏대를 올리고 고객에게 항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고객 민원으로 불이익을 받더라도 그 무례함에는 지고 싶지가 않았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벼르고 화를 내려는 사람에게 같이 화를 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예 그 고객을 피하거나 내 감정의 외부 표출보다 조금 앞서서 그 고객을 다독거려 주어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랄까!(아니 그 고객은 다독거릴 틈을 주지 않았다)
우리들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그 고객도 나처럼 하루를 돌이켜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