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통장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신다.
또 그 고객이다.
주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바깥에 있는 자동화기에서 통장을 정리하고 "통장에 인자가 이게 뭐냐"라고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이다.
자주 이의를 제기하는 고객이라 그 고객이 안으로 들어오면 무슨 내용인지 의례 짐작이 간다.
불편하시겠지만 안으로 들어오셔서 저희가 관리하는 기기에서 통장 정리를 하라고 해도 무슨 이유 인지, 고집 때문인지, 사회정의를 실현하시려는 것 때문인지 꼭 그 기기에서만 통장 정리를 한 후 이의를 재기하신다.
사실 그 기기는 용역업체에서 관리하는 자동화 기기라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서 장애 조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몇 번에 걸쳐 리본 교체도 요청하고 기기를 점검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도 담당자가 왔다 가면 며칠은 이상이 없다가도 일주일 정도 지나면 또다시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어 리본에 일부러 잉크를 많이 묻혀 놓은 것처럼 글자 테두리 위아래로 먹물이 번진듯하게 인자가 되는 것이다.
혹시나 고객님 통장에 문제가 있나 해서 내 통장을 찍어봤는데 똑같이 그렇게 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 고객은 지점장을 만나 따지고 싶다고 하는데 이런 일로(고객 입장에서는 중요한 일이겠지만) 지점장을 만나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지금은 안 계신다고 했다.
그 고객은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며 계속해서 지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도저히 그냥 가실지는 않을 것 같아 나는 차선책으로 팀장을 불렀다.
그 고객은 갑자기 팀장을 보자마자 언성을 높이며 "이래서 되겠습니까? 아무리 은행이 관리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렇게까지 내버려 두면 되겠습니까" 라며 따지는 것이었다.
그 고객이 너무 완강하게 항변하기에 팀장도 진땀을 뺐다.
우여곡절 끝에 용역업체를 관리하는 본부에 연락을 하여 특별조치를 취해서 다음번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그 고객을 돌려보냈다.
그 고객을 돌려보내 드리고 나서 업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두 번 정도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다시 세 번째 전화를 하자 받았는데 오늘은 휴가 중이라고 했다.
휴가 중이라 올 수도 없는 상황이고 모처럼만에 쉬고 있는 사람에게 안 좋은 얘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다음에 다시 전화드리겠다며 끊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전 해당 업체 직원의 휴가가 끝났을 것 같아 다시 전화를 했다.
"휴가는 잘 보내셨나요? 저번 주 금요일 전화드린 건으로 다시 전화드렸습니다"
나는 약간 뻥을 가미하여 지난주에 고객이 지점장실로 들어가 소란을 피웠으며, 여차저차해서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다시 한번 확실한 조치를 해달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업체 담당자는 다음 날까지 방문해서 통장 정리기 부스 자체를 교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다음 날까지 교체해 주겠다던 업체 담당자가 오늘 통장 정리기 부스를 교체하러 온 것이다.
교체 후 테스트를 해보니 깨끗하게 잘 인자되어 나온다.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진작에 이렇게 교체해 주지,,,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그동안 잘 인자되던 옆 통장 정리기에서 잉크가 번지는듯한 똑같은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 전화를 했는데 업체 담당자가 이번에는 그 기계도 통장 정리기 부스를 교체해 주겠다는 것이다.
다음 날 와서 바로 또 하나의 통장 정리기 부스를 교체해 줬다.
테스트해 보려고 내 계좌에 스마트폰으로 일원씩 몇 번 이체를 해서 새로 교체한 통장 정리기에서 정리를 해보니 아주 잘 인자된다.
그전에 내가 수차례 전화했을 때, 자주 인자 에러가 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때 바로 통장 정리기 부스를 교체해 줬으면 고객이 언성을 높이며 완강하게 항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왜 꼭 큰 소란이 나고 고객이 언성을 높여야만 교체를 해주는 것일까?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조그만 시그널이 하나 둘 발생됐을 때 그때 조치를 취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조그만 시그널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리고 무시하다 보면 나중에는 더 큰 문제가 되어 되돌아온다.
매사에 나타나는 시그널을 잘 살피고 대처하여 인생을 슬기롭게 잘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