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스트와 이타주의자
#1
내 최애가수 중 한 명인 태연이 얼마 전 새 곡들을 발표했다. 그 중 한 곡의 가사 일부들. "좀 이상해 왜 둘 사이에 너만 너만 보이는 걸까 / 오늘 나눈 문자 속에 새로 산 티셔츠 그 얘기뿐이야 / 그 좋아했던 립스틱 싫단 말에 버린 널 좋아했던 만큼 다 맞추려 했어 / 새벽의 긴 통화도 이젠 피곤해졌어 / Gonna block you. 불을 꺼." [태연 "To X" 뮤직비디오 링크 https://bit.ly/3RptfMf]
#2
나에게는,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은 루틴이 늘 똑같았다. 새드엔딩에서는 내 이야기만 하다가 상대가 지쳐 나가떨어졌고, 해피엔딩에서는 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새드엔딩에서는 나는 나와 다른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틀렸다고 비난하고 있었고, 해피엔딩에서는 내가 그 부분을 채워주려 애썼다. 새드엔딩에서는 나는 그 사람의 삶에 개입하려 했으며, 해피엔딩에서는 기도하고 지켜봤다. 새드엔딩에서는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해피엔딩에서는 우리는 각자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스스로의 내면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새드엔딩에서는 관계가 파탄났고, 해피엔딩에서는 관계는 열매를 맺고, 땅에 떨어져 또 새로운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어 무럭무럭 자라갔다.
#3
어떤 때에는 사랑이 나르시스트를 위한 도피처가 된다. 나르시소스(Narcissus)는 뛰어난 외모를 지닌 젊은이였지만 오만했고, 신들은 그의 오만함을 벌하기 위해 그에게 자신의 반영에 사랑에 빠지게 하는 저주를 내렸다. 그는 어느 날 숲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친 물웅덩이를 발견하고, 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에 매혹되어 사랑에 빠졌다. 그 자신의 반영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이 절망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나르시스 꽃이 되었다. 오로지 사랑이 타인의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 되거나, 타인의 목소리로 나를 칭송하는 것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면, 사랑에 빠진 그는 아마도 나르시소스일 것이다. 그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4
어떤 때에는 사랑이 '지나친' 이타주의자들을 위한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좋은 사람' 소리를 듣기에 목말라 있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한다. 내가 타인에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내적인 열등감과 불안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물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몰두하다 보면, 좋은 의도는 사라지고, 이상한 도그마만 머리 속에 남게 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어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보기 싫은 사람 만나도 반갑다고 인사한다. 그런데, 속은 곪아간다. 하루 이틀이지, 그런 것들은 병을 만들고 관계를 썩게 만든다. 그리고, 서서히 웃고 있어도 숨막히는 관계들의 거미줄이 주변을 채워가며 결국은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5
나 역시 모든 관계에 성공하지 못했다.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끊임없이 나의 이야기로 관계를 채워가기도 했고, 나의 취향에 함께 해 주기를 압박하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함께 해 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관계들은 처음에는 열정적이었지만 곧 지루해졌고, 시작부터 끝까지 드라마틱한 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끝나고 나니 타버린 재 같았다. 물론 성공한 관계들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알았고, 그 사람도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방식대로 살았다. 가끔 심각한 위기를 만나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더 차분해졌다. 태풍이 지나간 후 상처를 하나하나 함께 정리해가면서 몰랐던 우리의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관계들은 더 이상 지속되고 있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삶이라는 대지를 풍요롭게 만드는 단비같이 축복된 기억이 되어 주고 있다.
#6
성숙한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 나르시스트도, 이타주의자도 사랑에 성공할 수 없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에 귀기울여 주고, 상대방의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대신에 그 사람 자체를 바라 볼 수 있다면,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춰주려고 하지 말고 내 솔직한 마음 속 이야기들을 들려 줄 수 있다면, 우린 더 쉽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