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깁스 속에서 느끼는 엄마와 아이의 마음
마흔이 넘도록 ‘깁스’라는 건 내 삶과 무관한 일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한두 번씩 겪는다지만, 나와 가족에게는 늘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둘째가 4살 때, 자는 아이를 안고 계단을 내려오다 마지막 칸에서 굴렀다. 아이를 먼저 지키려는 마음이었는지, 아이는 멀쩡했다. 하지만 내 발이 꺾였다.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고통에 병원으로 향했다. 인대가 찢어져 반깁스를 했다. 그만하길 다행이다 싶었지만 3주간 출, 퇴근을 남편의 손을 잡고 다녔다. 일하는 것만 해도 너무나 불편함 가득이었다.
‘인대만 손상되어도 이렇게 아프구나.’
그동안 막연히 생각했던 ‘아이들이 다칠 때 속상하겠지’라는 마음이 한순간에 피부로 와닿았던 순간이었다. 누군가엔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처음 마주하던 상황은 늘 긴한 흔적을 남겼다.
그날의 경험은 이후 아이들이 다칠 때마다,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주었다.
이후 자라는 동안 얌전한 아이들이라 크게 다친 적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몇 번씩이나 정형외과를 다녀도, 우리 아이들은 그런 적이 없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첫째가 4학년이 되던 해였다.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하려 침대에서 나오다가 뜬금없이 발목이 아프다고 했다. 괜히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닐까 싶어 ‘괜찮아’ 하고 억지로 등교시켰다. 하지만 오후에 “못 걷겠다”는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병원으로 향했다. 자다가 일어난 상황이었는데, 검사결과 인대가 찢어져 반깁스를 해야 했다. 아이가 이리 어이없이 다치는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사고는 늘 한순간이었다. 그 뒤로 5학년까지 2년 동안, 발목·손목·팔꿈치까지 네 번이나 깁스를 했다. 그저 걷다가 넘어지거나 놀다가 뛰다가도 꼭 반깁스로 이어졌다. 활동량이 많지 않은 아이가 자꾸 다치니 속상함도 컸다.
'대체 왜 이리 다치는 걸까' 워킹맘으로서 늘 불편한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이어진 ‘반깁스 행진’은 초6이 되면서 서서히 멈췄다. 지금은 축구, 농구 같은 격렬한 운동에도 다치지 않는다. 까불며 뛰어도 다치지 않는 걸 보면, 그때를 발판 삼아 강해진 게 분명하다. 위험해 보이는 행동에도 나름의 안전한 노하우가 생긴 듯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지난 2년간의 경험이 나쁜 것은 아니란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둘째가 4학년이 되자, 또다시 반깁스가 시작되었다. 지난여름, 줄넘기 방과 후 시간에 피구를 하다 발목을 접질려 인대가 찢어졌다. 첫째 때 겪어본 경험 덕분에 놀라기보다 빠르게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둘째로서는 생애 첫 반깁스였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괜찮다'라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첫째 때의 경험이 발판이 되었다. 2주 넘게 물리치료까지 받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간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여름날이라 더위까지 더해져 고생이 컸다. 그 2주가 너무 힘들었는지, 다시는 다치지 않겠다며 큰소리로 다짐했다.
마지막 치료날 의사는 말했다.
“약해진 상태라 또 다칠 수 있으니 늘 조심하세요. 깁스용 신발은 보관해 두는 게 좋습니다.”
3개월이 지난 이번 주, 배드민턴 방과 후 시간에 또 피구를 하다 발목을 접질렸다. 속상한 마음에 '피구는 왜 그리 열심히 하느냐' 핀잔을 주기도 했다. 도저히 걷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부축해 정형외과로 또 향했다. 이번에는 성장판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지난번처럼 인대 손상이라 믿었지만, X-ray 결과 성장판 골절이 확인되며 반깁스 기간은 4주로 늘어났다.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지난번처럼 2주만 하면 된다고 마음먹고 왔는데, 4주라니. 나 역시 놀랬다.
아이도 당황했지만 곧 장난스럽게 말했다.
“엄마, 4학년 때가 다칠 때인가 봐. 오빠도 그때 반깁스를 많이 했잖아. 나도 이제 4학년이 되니 두 번째 하는구나.”
속상한 엄마를 두고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그 모습을 보는 엄마 마음 한편은 여전히 아팠다.
수업 대부분에서 열외가 되고, 피아노도 멈추고, 방과 후 활동도 멈췄다. 오고 가는 것조차 불편해 주말 외출도 줄었다. 활동이 줄어드니 살이 찌는 게 느껴져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았다. 한창 예민한 아이가 절뚝거리며 다니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더 무거웠다.
4주간 이어질 반깁스 동안, 매일 아침 등교를 돕는 것도 쉽지 않다. 회사에 다녔다면 더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오고 가는 길을 함께하고, 집안에서 시간을 나눌 수 있음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 수술 없이 안전하게 회복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결국, 닥쳐온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진다는 걸 배웠다. 아프고 우울해도 생각을 전환하며 시간을 쓰면 의미 있는 순간이 된다. 정형외과 방문과 물리치료 시간을 통해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언젠가 떠날 아이와 딱 붙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 귀하다.
고통의 시간을 겪고 나면 근육이 더 단단해지듯,
아이도 이번 시간을 통해 더 단단해지길 바란다. 나 역시 이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 더욱 단단해진 나를 만나길 기대한다. 아이의 성장만큼, 엄마의 성장도 따라오는 법이니.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당할 만한 시험을 겪고 나면 더 강해질 날을 기대하며, 남은 시간을 소중히 보내리라 다짐한다.
여전히 절뚝거리며 걷는 아이와 함께 걷는 이 가을이 헛되지 않도록, 더욱 친밀한 시간을 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