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과 내리막, 그 사이에서 배운 것들
"엄마, 산은 참 이상해. 올라가는 길인데 왜 자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갔다가 평지를 걷기도 하는 걸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정상에 와 있어."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시작했다. 그냥 걷는 건 지루해하는 아이들과 함께 걸을 방법을 고민하던 중, 자연스럽게 등산이 떠올랐다. 물 한 통과 간식 몇 개, 튼튼한 다리와 운동화만 있으면 언제든지 충분하다. 인천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낮은 산들이 있어서, 큰 준비 없이도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들이 많다. 동네 작은 산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도장 깨기처럼 오르기로 가족 모두가 동의했다.
올해의 첫 산은 문학산이었다. 작년에 오른 계양산보단 낮고, 틈날 때오르는 원적산보단 조금 더 높은 산으로 정했다. 등산코스를 확인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금방 오를 수 있어. 예전에 내가 가봤어!"라고 큰소리쳤던 남편의 말과 달리, 예상치 못한 갈림길들이 많았다. 표지판을 따라 걷다가도 중간중간 길을 헤매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서성이기도 했다. 주변에 오르는 등산객이 있으면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비슷하게 시작한 사람들은 총알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살짝 당황한 엄마, 아빠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둘째는 갑자기 "더 이상 못 걷겠다. 여기 중간에서 멈추겠다."라고 엄포를 놓으며 주저앉았다. 첫째는 구글지도를 켜고 먼저 길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은 "예전과 다른 길로 올라와서 잘 모르겠네." 그제야 이실직고를 하면 서 멋쩍게 웃었다.
이리저리 등산로를 찾아가며 오르다 보니 표지판이 다시 나타났고, 내려오는 등산객들과 마주치면서 마음이 안정되었다. 길을 잃고 헤맸지만, 계속 가다 보니 테크길도 발견하며 오르락내리락, 평지를 걷는 과정을 지나 결국 정상에 올랐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이가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산은 참 이상해. 어차피 올라가는 건데, 왜 자꾸 내려갔다가 꼬불꼬불 다시 올라가?"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내려다본 풍경은 문득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산에 오르는 건 인생과도 같다. 매일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늘 앞을 향해 가지만, 때론 멈춰 서기도 하고, 때론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르막, 내리막, 평지가 반복되는 인생. 그렇다고 늘 오르막만 있는 것도 아니고 늘 내리막만 있는 것도 아니고, 늘 평탄하기만 한 것도 아닌 우리네 인생 스토리 같다.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하며 헤맬 때도 있고, 돌아가는 길이 더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하게 정상에 닿아있기도 한다.
삶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다. 언젠가 힘겹게 오른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성취감을 느끼지만,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산은 가르쳐준다. 산속에 있으면 햇빛도 가려주고, 바람도 막아주지만 때론 벌레와 산짐승의 위험도 있다. 평탄한 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울퉁불퉁 가시밭 길만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론 돌길도 있고, 편한 테크길도 존재하는 산길은 우리 인생을 축소해 놓은 지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표지판이 존재하지만, 때론 그 방향을 이해하지 못해 헤맬 때도 있다. 정상에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상쾌하지만, 얼마 후엔 땀이 식어 오래 있으면 추워지는 경험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에겐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인생이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가르쳐주고 싶었다. 한참을 조용히 듣던 아이는 지금껏 살아온 날들 중에서 등산의 과정이 이해된다고 했다. 어른의 시선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일지 몰라도, 아이가 겪는 시간 속에서도 이 과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엄마, 내려오는 길도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다리에 더 힘을 줘야 해서 오를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해요." "맞아. 그래서 내려오는 것도 배워야 해." 힘들고 다리가 아파도 내려오는 길은 더 힘을 주고 집중해야 하는 법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주의 주면서 등산을 마쳤다. 오랜만의 운동이었기에 근육통이 생기겠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아이들을 칭찬해 주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산을 오르고, 때로는 내려온다. 꼭대기에 올라 환희를 느낄 때도 있지만, 끝없이 오르막이 이어질 것 같은 순간도 있다.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있고, 돌아가는 길이 더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사는 건 무수히 많은 등산의 과정이 반복됨을 마음속에 새기며,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과정들을 한결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평안이 생겼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산을 오르고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다리로, 때론 쉬어가면서, 때론 숨을 헐떡이면서,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내려올 때, 지금의 이 순간들을 되새기며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산마다 다양한 모양과 높이, 길들이 펼쳐지듯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각자의 삶의 짐들이 이렇게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길 기도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들이 생겼다.
그러니 조금 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로 충분히 잘 가고 있음을 믿으니까.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이처럼 늘 변하게 마련인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희망을 품게 된다.
-<반고흐, 영혼의 편지>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