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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Mar 05. 2024

혼자 마시는 라떼

추억 한잔, 두 잔


산미가 강한 원두보다는 묵직한 바디감에 고소한 맛의 '콜롬비아 수프리모'같은 원두를 좋아한다. 에스프레소 투샷과 따끈한 우유가 더해진 라떼라면 더없이 애정한다. 어제도, 오늘도 마셨고, 찐친들과도 마시고, 혼자서도 마신다. 종종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빠진 추억 한 잔의 라떼를 마시기도 한다. 그 라떼를 마시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12년 전에 마신 라떼_ 나 여덟 살 때는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가시던 날 비가 많이 왔었고, 아빠와 함께 엄마 병실에 갔다 왔었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10년 전에 마신 라떼_ 내가 둘째 낳고 백일 됐을 때는 애 둘도 힘든데 엄마는 애 셋을 어떻게 키우셨을까? 정말 정신없으셨겠다. 터울이 큰 동생들을 조금이라도 돌보면서 엄마를 도와드렸을지 기억을 떠올려본다.

3년 전에 마신 라떼_ 나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둘째 아이의 자그마한 손을 보니 건반을 치기에 너무나도 작아 보인다. '피아노를 배우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2년 전에 마신 라떼_ 나 국민학교 입학 때는 초품아라는 단어가 있었나 싶게 학교 가는 길이 지금과는 멀고, 험했는데 우리 엄마는 어떻게 등교시키셨을까? 걱정되지 않으셨을까? 난 이만큼의 거리를 혼자 보내도 걱정 많은 엄마인데 내 눈에 강하기만 했던 엄마도 속으로는 힘드셨을 테지.

지난주에 마신 라떼_ 나 국민학생 때는 종이인형 잘라서 놀다가 원피스 어깨끈하나 뜯어질 때마다 속상해하고, 친구의 미미 2층집을 부러워했었는데, 나의 아들들은 포켓몬에 한참을 빠졌다가 이젠 쳐다도 안 본다. 레고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손이 야물어지니 이제 프라모델에 빠졌다. 딸과 아들의 관심사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계속 알아가는 중이다.

열 시간 전에 마신 라떼_ 나 스물다섯 살 때는 부모님께 얼마 만에 한 번씩 전화를 드렸을까? 그때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었다. 지난 설 명절 이후 3주 만에 만난 엄마가 내 손을 자주 만지작만지작거리신다. 손등에 그 새 검버섯이 늘어났고 살갗이 얇아지셨다. 안그래도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핏줄이 더 도드라져보인다.

아무말 없이 있으시다 내 머리 쓰담쓰담. 무뚝뚝한 큰딸이라 쑥스럽기도해서  괜히 딴청 피우는듯 했지만 사실 머릿속으로 어릴 때 생각했다.

'나 어릴 때도 엄마가 쓰담쓰담 많이 해주셨는데 이따 집에가서 애들도 안아주고 쓰다듬어줘야지'




'라떼는 말이야'라는 유행어이자 그 말을 꺼낸 자와는 거리감이 느껴지게 되는 묘한 문구가 있다.

상대적으로 몇 해를 더 일찍 살아온 사람의 애정 어린 조언이라고 해두지만 가급적 밖에서는 '카페라떼'를 마시지, 다른 라떼는 고이고이 넣어둔다.

혼자 마시는 라떼는 누구에게 나의 옛 시절을 빗대어 굳이 무언가를 깨우치게도, 당부의 말을 전하지도 않는다.  

그(어떤) 때를 그리워하는 나. 아이의 하루하루를 보면서 기억 너머 어린 시절의 비슷한 때를 떠올리고 싶을 때면 나는 라떼를 마신다.


라떼는 말이야
기성세대가 과거 회상을 할 때 사용하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표현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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