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근처 캠핑장에 온 김에 오래전 단풍철에 겹쳐 되돌아갔었던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주차장에서부터 케이블카매표소까지 오르막을 오르면서 '저 위에 올라가면 구름다리가 있다'라는 남편 말에 아이가 꺼낸 말이다. 고소공포증은 없지만 등산도 제법 하던 터라 함께 갈 수 있겠거니 했는데 구름다리라는 것을 처음 지나가볼 예정인 아이에게는 새로운 것, 두려운 것일 테다. 평소 철저히 내 기준에는 아이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억지로 요구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미모드가 장착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아이에게 경험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래 시도해 보기 전에 두려운 마음이 들 수 있어. 그런데 막상 해보면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한번 해보자"
그 말을 할 때만큼은 조금 전까지 미간을 찌푸리며 발성연습을 하던 헐크엄마는 사라지고 갑자기 고상하고 우아한 친구엄마의 모습에 빙의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거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한마디 더 추가한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오는 지루함과 어려움 역시 잘 견뎌낼 줄 알아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라고 -
뒤돌아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넌 그런 말을 할 만큼 잘하고 있니?'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과연 그 말에 떳떳한가? 생각해 본다. 어미모드만 장착했다 하면 나부터도 지키지도 못하는 그 어떤 행동과 말을 아이에게 마치 공자, 맹자라도 된 듯 근엄하게 강조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사춘기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에게 어미의 양면성을 들킬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미 모른척해주고 있을지도.
그날 케이블카도 잘 탔고, 구름다리 역시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갔다. 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고, 올라와서 보니 더욱더 절경인 바위산의 위엄을 가까이 느끼며 '올라오길 잘했다'는 짧은 소감을 남겼다.
아이는 그러한데, 고상한 말 뒤에 돌아서 터져 나온 실소의 행방을 고백해 본다.
운전면허 두 번째 갱신을 목전에 두고, 운전을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운전을 비슷하게 시작했다가 이젠 베스트드라이버가 된 친구들을 보면 하나같이 '매일 타고 다니면 늘어. 자주 하면 돼.'라는 이야기를 한다. '진짜 그런가 보다' 싶다가도 '걸어서 다 해결되니 차를 탈 필요가 없다'며 운전대를 안 잡을 이유들만 채운게 한 트럭이다. '급하면 다 하게 돼'라는 말에 '내가 아직 안 급하나 보다'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그러기엔 선뜻 카풀을 자처해 주시는 감사한 분들의 손길을 생각하면 '그게 바로 급한 때'임을 다시 한번 깨우친다.
최근에 받게 된 수업이 있어 끝나고 짐이 한가득이라 결국은 그렇게 밀당하던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종종 근거리를 해보긴 했지만 늘 내키지 않는 무거운 몸과 마음을 시트까지 갖다 앉히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동을 걸기 전엔 평소에는 보기 힘든 신앙심이 십 분 발휘된다. 성호경을 한번 긋고, 브레이크의 위치를 확인하며 숨을 가다듬는 나만의 의식을 거행한 후 D버튼을 누른다. 이제 갈 곳은 없다. 이미 도로 위에 놓인 이상 어떻게든 가야만 하는 상황에 내던져진 것이다. 주 1회는 무조건 차에 올라타야 해서 한 달을 이렇게 했더니 도로에서 가끔 듣는 빠방소리에도 내성이 생긴 모양이다. 어깨 빠짝! 힘을 주니 온 근육이 딱딱해지고 심장은 벌렁벌렁. 도로 한가운데 서있는 나의 상황에도 열이 오르지만, 속으로는 나도 지키지 못할 행동을 아이한테는 태연하게 강조했다 생각하니 혼자 타 있는 차 안이 마치 찜질방 못지않게 후텁지근해진다.
"그래 시도해 보기 전에 두려운 마음이 들 수 있어. 그런데 막상 해보면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한번 해보자"
고 하면서 시도해 보았나? 그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오는 지루함과 어려움 역시 잘 견뎌낼 줄 알아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는 건 어떻고? 내가 과정을 잘 견뎌내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나?
혼자 묻고 답하면서 알았다.
그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바람과 좋은 방향으로 아이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여러 가지 마음이 뒤섞여있었다는 것을.
정작 새로운 일에 제일 두려워하고 망설이는 사람은 나였고, 과정에서 오는 지루함과 어려움 못 견뎌하는 것도 나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