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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Aug 08. 2024

시간이 해결해 줄까요?

반려동물 무지개다리 건너던 날


 

 으스러질 것만 같은 물컹한 느낌과 앙칼진 소리가 무서워서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복남이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2008년 어느 날. 자그마한 갈색 푸들이 우리 집에 왔다.

비염이 심한 엄마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데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키울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지인의 부탁과 동생들의 바람은 엄마의 지독한 비염을 이기지 못했다.

자그마해서 위협적이지 않던 첫인상 덕분인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던 나도 거부감 없이 복남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한번, 두 번 손을 건네다 보니 쓰다듬는 제스처도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짙은 갈색의 꼬불꼬불한 털, 땡그란 눈을 가진 복남이가 있으니 열세 살, 열다섯 살 두 동생의 사춘기 시절은 큰 잡음 없이 무난히 지나갈 수 있었다.




 어느 날, 가족 단톡방에 복남이 사진이 도착했다. 친구와 얘기 중 연이는 진동소리에 열어본 깨톡. 무심결에 넘기다가 '무지개다리'가 내 눈에 탁 걸린다. "복남이 무지개다리 건넜어요?"라는 동생의 물음에 몇 분 간 정적이 흘렀다.

한지를 덮은 채 누워있는 복남이와 그 앞에 엄마, 아빠의 마지막 편지가 놓인 사진 몇 장이 연달아 전송되었다.

'하...'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깊은 탄식이 나온다. 복남이는 우리 삼 남매 모두 집을 떠나온 이후로 막내 노릇을 톡톡히 하며 부모님 삶에 큰 활력이 되어줬다. 그런 복남이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건 약 3년 전부터다.

당뇨를 앓아서 아침, 저녁으로 주사를 맞았고, 백내장에 보는 것도, 소리를 듣는 것도, 냄새를 맡는 것 어려워질 정도로  모든 감각기관이 말썽이었다. 최근엔 걷는 것도 어려울 정도라 산책을 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저녁 인슐린주사를 놓는 게 일과가 되었고 복남이의 요양보호사로 일상을 보내셨다.

 

복남이에게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


 

 활력에 넘치던 옛 복남이가 떠오른다. 목욕하고 개운한 상태로 화장실에서부터 소파 위까지 날다시피 뛰어다니면서 가죽을 긁어놓기 일쑤였고, 바깥 활동을 하면 배변처리는 우리의 몫. 반려견을 키우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육아용품 챙기듯 반려견을 위한 가방 하나씩은 필수품이었다. 누구라도 오면 반가움의 표현을 과하게 하느라 애써 다독여놓다가도 또 꼬부랑 갈색 털 사이의 땡그란 눈으로 귀여움을 뽐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곤 했다. 어떤 날은 장시간 집을 비우게 돼서 애견호텔에 맡겨놓으면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모두를 걱정시키곤 했다. 그런 탓에 4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우리 집에 부모님이 오시는 일은 연례행사일 정도였다. 엄마가 아이의 순간순간의 모습들을 찍어두듯이 함께하는 동안 그때그때 포착된 모습들을 공유하던 부모님의 모습도 떠오른다. 큰 기쁨이 되어주었던 반려동물. 말은 못 해도 서로의 생각을 마치 아는 것같이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아련한 추억들을 뒤로하고 보니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인 최근 반년사이에는 용변을 보고도 앞도 안 보이고, 냄새를 맡질 못하다 보니 온 집안이 어지럽혀지곤 했다. 매일 그런 집을 치우는 게 엄마의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복남이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돌보는 엄마의 모습도 안쓰럽긴 마찬가지였다.

"엄마 너무 힘드셔서 어떡해요?"

"그래도 가기 전까진 잘 돌봐줘야지"

 엄마도 지칠 대로 지쳐 보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으시댔다.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딸은 엄마걱정이 앞선다. 지금의 엄마마음에 후회는 없으실까?



 

 복남이와의 이별을 고한 곳은 반려동물의 화장터로, 고인의 화장터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마주했던, 약간은 생소한 풍경이었다. 반려동물이 이제는 인생을 함께하는 가족구성원으로서 든든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반려견은 사람보다 생애 주기가 짧지만 생의 시작과 끝에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반려동물과 함께하기로 결정하는 것에 책임감의 무게가 더해질 수밖에 없다. 


 복남이의 장례를 치른 뒤 외할머니댁을 찾은 둘째 연우가

"엄마 저 때문에 복남이가 하늘나라 간 거 아니에요?" 라며 훌쩍이는데 아이도 종종 보던 강아지에게 했던 말과 행동에 후회하는 걸 보니 마음이 여간 많이 쓰였나 보다. 네 탓이 아니라며 돌아서 보니 집안 곳곳에 복남이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장례식장에서 준 액자에는 제일 귀여웠던 사진이 걸려있고, 그 앞에는 간식들이 올려져 있다. 


그걸 보며 드는 생각. '나도 허전한데 매일을 함께한 부모님의 허전함은 어떻게 채워드린담?'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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