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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Sep 23. 2021

있는 그대로의 널 본다는 건


내가 얼마나 지극히 내 관점에서 널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은 건 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간 미술특화고등학교 입시설명회로부터 였다. 넌 담임선생님에게 입시 설명회 팸플릿을 받고도 가지 않을 생각으로 내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어는 봤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난 묻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게 있으면 얘길 해야지, 왜 얘기 안 했어!” 라며 싫어하던 널 끌고 설명회에 참석했고, 돌아오는 버스 뒷자리에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와야 하는 이유’를 그 학교 선생님들보다 더 열심히 떠들었으니까.


넌 정말 그 학교에 가길 싫어했다. 그럴 만도 하다. 내성적인 네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학교에 가는 건 부담됐을 테고, 무엇보다 멀미를 심하게 하는 네게 버스로 왕복 3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에 가라고 했으니 얼마나 싫었을까.


나는 그 학교에 진학하면 네가 원하는 미대에 들어가 평탄한 앞날을 누릴 거라 생각했다. 형편이 어려운 우리 집에서 보내는 미술학원보다 미술 특화고의 엘리트 선생님들이 훨씬 잘 가르쳐줄 것 같았고,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해 맞지도 않는 과목들로 시간을 낭비하느니 미술과 입시 대학에 맞춰 커리큘럼을 잘 짜 놓은 곳에서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철저하게 ‘성적’만 생각했고 ‘네 마음’과 ‘네 성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달은 건 작은 이모와의 통화에서였다.


내성적이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할 거라 생각했던 나와 달리, 이모는 너의 안정감을 가장 우선시했다. 걸어서 20분이면 다닐 수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과 버스 타고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리는 학교에 다니는 건 물리적인 거리감에서 네 마음이 안정되는 게 다르다는 거였다. 게다가 넌 마음이 유하고 여린 아이인데 특화고에 가 미술로 경쟁하는 아이들 속에서 그 스트레스를 다 견딜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안정감’.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너의 마음. 나는 고집스러웠던 나만의 생각에서 벗어나 네게 물었다. “그렇게 가기 싫어?” 너는 내 계속된 설득에 지친 듯이 “원래부터 가기 싫어서 언니한테 설명회 안 보여준 건데 언니가 억지로 끌고 갔잖아” 라며 힘없이 얘기했었다. 그런 널 보며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기 보내려고 했던 거지?’ 부끄러워졌고 네 마음을 충분히 보살피지 않음에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했다.


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라는 걸 깨달은 그때가,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첫 순간이며, 내 주관과 생각에서 벗어나 ‘그럴 수 있지’로 타인을 바라보게 된 내 삶의 엄청난 터닝 포인트였다. 


너는 언제나 내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마음의 온기같은 존재이다.



* <오롯이 널 사랑하기까지>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언니의 글을 읽고 동생이 직접 그린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불펌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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