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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Sep 29. 2021

마음을 돌보다


여느 부모들처럼 너의 고3은 아빠와 나에게도 시집살이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기에 늘 일찍 잠자리에 들던 아빠는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미술학원에서 돌아오는 널 데리러 큰길까지 마중 나가며 널 위했다. 나는 네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최대한 말을 조심했고, 밤에 학원에서 돌아오면 소화 잘 되는 요깃거리를 준비했으며, 네가 공부할 때는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아 보며 조용히 지내기 일쑤였다. 


네 생각만큼 미술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불안감에 잠식되어 학원에서 돌아와 기죽어 있는 날엔 서로 긴 대화를 했고, 너무 힘들다며 꺽꺽 우는 널 안아주며 옆에 있다 보면 새벽 1시를 넘길 때가 많았다. 힘들어하던 널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늘 아렸기에, 너의 고 3은 내가 고3일 때보다 더 많은 진통을 느낀 시기였다.


나는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고3 수험 기간에도 별다른 긴장감 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보냈었다. 대학교 때는 시험 직전에 도서관에서 자다 일어나 밥 먹으러 가는 날 보며 옆에 있던 선배가 “그게 지금 들어가냐”라고 신기해할 정도였다. 아마도 시험 성적에 연연하지 않던, 수능 전 날에도 “잘 못 봐도 괜찮아, 대학 안 가면 어때, 양말공장에서 일하면 되지!” 라며 내 마음을 풀어주던 엄마가 있었기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고, 자립심 강한 맏이로서 누군가와 비교되는 일도 없었기에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 나였기에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고, 스스로 높은 기준을 적용해 다른 학원생과 비교하며 힘겨워하는 널 볼 때마다 “스스로를 믿으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북돋아주어도 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오래가지 못했지만, 마음이 힘든 순간마다 옆에서 네 얘길 들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수시 실기시험이 시작됐다. 


첫 실기시험은 아빠도 동행하였고, 다른 아이들처럼 응원을 받으며 들어간 너는 거진 4시간을 넘기고 나왔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속에서 목 빠지게 너를 찾던 나와 아빠를 본 순간, 울먹거리던 네가 생각난다. ‘잘하고 싶었겠지, 근데 처음이고 낯선 곳에서 많이 떨렸겠지…’ 우는 너를 꼭 안으며 “괜찮아, 잘했어” 얘기하던 나도 네 맘고생이 느껴지며 눈물이 났다.


네가 가장 가고 싶었던 대학의 실기시험장에는 나만 갔었는데,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난 채로 나온 너는 배가 너무 아파서 주먹을 꽉 쥔 채 그림을 그렸다 했다. ‘너무 잘 보고 싶어 긴장했구나. 심호흡을 깊게 해 보라고 할 걸…’ 늦지 않게 잘 도착했지만 그날 새벽 내가 카카오 택시 도착지를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택시기사님과 설왕설래한 걸로 네게 스트레스를 준건 아닌지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렇게 아픈 배를 참아가며 시험을 마치고 나온 네가 안쓰러우면서도 생각지 않았던 너의 집념에 내심 놀라워했다.


대학생이 된 너는 여전히 교수님들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할 때가 많다.


학기가 시작되면 4개월 동안 연속되는 과제들로 수면부족에 시달려 심신이 모두 지쳐있는 상태이고, 과제마다 매주 컨펌을 받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미대 특성상 교수의 말 한마디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1학년을 마친 너는 바닥까지 내려앉은 심신의 상태를 끌어올리고자 1년 휴학을 결정했고, 그 후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좋은 결과물을 내며 걱정을 한시름 놓게 했다. 물론 3학년 2학기인 지금은 개강일부터 자퇴하고 싶단 얘기를 하고 있어 ‘나도 퇴사하고 싶어’로 맞대응하고 있지만..


네 마음이 지칠 때, 네가 필요할 때 나는 늘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네 마음을 돌보는 게 내 몫이라 생각하기에. 


그러니 네가 마흔이 되고, 칠순이 되어서도 모든 일을 내게 얘기해주길. 그렇게 언제고 네 마음을 돌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 <오롯이 널 사랑하기까지>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언니의 글을 읽고 동생이 직접 그린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불펌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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