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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Oct 05. 2021

채울 수 없는 헛헛함


‘엄마’

엄마라는 존재는 떠나보낸 후에야 느껴진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살아가는 느낌. 말로는 표현 못할 평생에 걸친 헛헛함.

늘 내 편이고, 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유일한 사람.

거창한 성공보다 내 건강함이 가장 소원인 사람.

내 안위가 가장 걱정되고, 밤길에 귀가가 늦으면 걱정되어 잠 못 드는 사람.


이런 엄마가 없는 시간 속에서 늘 혼자 같던 내 헛헛함은 네가 크며 내게 주는 위안으로 조금씩 채워져 간다.


너는 어릴 때부터 유하고 여렸기에 늘 내가 지켜줘야 하는 아이로만 생각했다. 나의 독립으로 서로가 떨어져 살 때부터, 거진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네 안위를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너의 걱정과 불안을 들을 뿐 내 얘기를 네게 한다거나, 몸이 아플 때 네게 '날 챙겨달라' 부탁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었다. 넌 내가 지켜야 할 아이고, 내가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회사에서 일과 사람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두서없는 넋두리처럼 불만과 불안과 걱정을 토로하던 내게 네가 해준 예리하고 따뜻한 말들은 내게 많은 위안과 응원이 되었다. 그런 너의 모습에 '이제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하며 내심 기쁘고 흐뭇한 마음이 꼬물꼬물 올라왔었다. 그리고 요즘엔 내가 네게 의지할 때도 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코로나 백신 접종시기에는 '나 혼자 있다 죽으면 어떡해. 여기 와있어!'라고 무서움을 표현하며 당연하게 와달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덧 삶의 희로애락 중심에 네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주는 위안이 무엇보다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평생 채워지지 않는 구멍일 것이다. 

네가 어릴 때부터 치킨이건 백숙이건 닭다리는 네게 양보했고, 네가 초등학생 때는 손이 데일 듯한 뜨거움 속에서도 위생장갑을 끼고 뜨거운 감자탕에 있는 고기를 발라줬으며, 밥을 빨리 먹는 나는 느리게 먹는 널 생각해 늘 어느 정도 먹어야 하는지 눈치를 봐가며 네 몫을 남겼다. 내가 외동일 때 엄마가 해주던 모든 게 이제는 내가 네게 해주는 것이 되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엄마의 빈자리가 경험 상 남을 수밖에 없었다.


종종 아무에게도 말할 수도 없고 어느 곳에도 기댈 수 없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엄마가 옆에 있어 무엇도 두렵지 않던 그 마음이 그리워서인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든다. 그렇게 뻥 뚫린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다 그 시기를 지나면 또 괜찮아지지만, 그런 시기가 올 때마다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고 채워지지 않는 것인지 절실히 느껴진다.


너는 어떨까.

엄마가 돌아가신 게 잘 안 와닿는 듯했던 8살의 네가 어느 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서럽게 울어댔다. “엄마 사진을 보자” 하니 “엄마 얼굴은 사진에 있는데,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라고 더 서럽게 울어 날 가슴 아리게 했던 날. 너는 얼마나 엄마를 기억하려 되새김질했던 것일까.

그렇게 작던 너는 이제 앨범 속 오래된 사진들과 얼마 안 남은 엄마의 물건들로 엄마를 기억하려 한다. 네가 느끼고 경험한 것보다 내가 해주는 얘기들로 엄마를 떠올리는 넌 어쩌면 나보다 더 큰 공허함을 가슴에 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아닌 언니가 주는 사랑의 크기가 다를 것이기에.


나보다 더 헛헛한 네 마음을 채워주는 건 이번 생의 내 몫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몫을 채움으로써 나는 내 마음도 채운다는 걸 알기에 기꺼이 네게 내 평생의 닭다리를 양보할 수 있다.


* <오롯이 널 사랑하기까지>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언니의 글을 읽고 동생이 직접 그린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불펌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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