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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Sep 13. 2021

마음을 열다


엄마는 내가 너에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삐뚤어진 애정표현’이라며 고개를 젓곤 했다. 

어린 동생이 귀여웠던 나는 청소하다 가만히 앉아 놀고 있는 네 얼굴 쪽에 청소기를 들이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질색하던 네 행동이 생각난다. 그래서인가? 너는 어릴 때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밥상머리 앞에서는 배추김치의 잎은 안 먹고 잘게 잘라진 줄기(무생채였나..)만 먹던 네게 고루 먹으라는 애정을 담아 잎을 잘게 잘라 먹여보려 했지만 투정 부리며 먹지 않았었고, 엄마가 반찬으로 나도 좋아하던 치킨너겟을 차려주면 넌 2개쯤 남았을 때부터 내가 못 먹게 하는 등 그닥 언니에 대한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네가 아주 어릴 땐 난 중고등학생이었고, 무언가 기억할 때부터는 대학생으로 나가 놀기 바빴으니 애정이 싹틀 만큼 같이 있는 시간이 없었던 듯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너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지만 마음이 덜 자란 나의 따뜻하지 못한 말들에 네 마음은 열리지 않았고, 사회초년생부터 4-5년 간 매일 야근이 이어지며 네 얼굴은 주말에만 볼 수 있었으니, 그 시간이 충분했겠나 싶다.


네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내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보고 있을 때 너는 서럽게 “언니는 집에서 TV만 보고 핸드폰만 하고 나랑은 안 놀아” 라며 울어댔다. 친척집에 놀러 갔을 때 다들 스마트폰을 보며 놀고 있는데 너만 없어 혼자 심심했고, 학교 친구들도 스마트폰으로 연락해 너만 대화에 끼지 못한다는 말로 내 가슴을 후벼 파며 우는 널 보고는 ‘아차!’ 싶어 핸드폰을 바꿔줬다. 그 후 너는 스마트폰에 빠져, 나와 얘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너는 게임과 스마트폰에 빠졌고, 나는 잦은 야근에 지쳐 집에 오면 주야장천 TV 보며 멍 때리곤 했다. 그러던 중 내가 29살이 되었을 때, 몸과 마음이 지쳐 네게 짜증 내는 내 모습과 그 짜증을 아무 말도 못 하고 받아내던 네 모습이 마음 아파 견딜 수 없었고 너와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서러워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집에서 쉬던 약 8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네가 얘기하는 ‘천사 같은 언니’가 되었다. 

네가 학교 갔다 돌아와 미술학원 가기 전 30분 동안 뭐라도 먹이려고 매일같이 밥상을 차려줬고, 너는 환한 얼굴로 집에 들어와 맛있게 밥을 먹고 갔다. 9시 등교제와 밤 10시 이후 학원 운영 금지로 하교 후 학원 시작 전까지 시간이 빠듯해 많은 아이들이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등으로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는 게 많았는데, 너는 편의점은 안 갔지만 늘 허겁지겁 네가 차려 먹느라 집에서 대충 때우고 가기 일쑤였으므로 누군가 차려주는 밥상이 마음의 위안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없던 시간 동안 너는 그렇게 힘들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고, 그렇게 매일 널 챙기는 내 진심을 알아주는 듯 네 응어리진 마음이 풀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방을 쓰며 많은 시간을 함께 있다 보니, 네 사춘기를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었고 너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너는 늘 표정에서 기분이 다 드러났기에 안 좋아 보이는 날엔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물으면 ‘아냐’라고 했고, 그나마 ‘기분이 별로네’라고 답하는 날에 한 단계 더 들어가 ‘왜? 무슨 일 있었어?’ 물으면 ‘그냥’ 이라며 더 이상 말을 안 하는 게 보통였다.


너와 보내는 시간이 적었을 땐 이렇게 대화가 마무리되고 말았지만, 긴 시간을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네 옆에서 널 기다리다 보면, 감정이 잦아들면서 ‘오늘 무슨무슨 일이 있었어’, ‘오늘 어떤 애가 이런 얘길 했어’ 등 하나 둘 무슨 일로 기분이 상했는지 스스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비록 내가 그 얘기에 공감하지 못하고 꼰대같이 얘길 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대화가 많아지면서 네가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마음을 느끼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 너에 대해 많은 걸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퇴사 후 8개월의 휴직 기간을 가졌기에 나에 대한 네 마음이 열릴 수 있었고, 우리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너와 같은 방에서 10년을 지내며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오롯이 널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내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가장 친한 친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은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다.


* <오롯이 널 사랑하기까지>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언니의 글을 읽고 동생이 직접 그린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불펌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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