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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Sep 13. 2021

혼자가 아닌


너가 막 8살이 되던 해, 우리는 엄마를 잃었다. 

너가 나고 자라는 동안 엄마의 생은 서서히 암으로 사그라졌고, 마지막 2년은 뼈에 전이된 암으로 인해 각종 골절이 이어지고 수술이 반복되며 앉지도 걷지도 못한 채 누워있어야만 했다. 결국 엄마는 집에 오지 못한 채 병원에서 우리 곁을 떠났다. 


난 아직도 계속 투여되는 진통제로 정신이 혼미할 때조차 널 걱정하던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다. 아직 8살밖에 안 된 작은 너가 얼마나 걱정되고 눈이 안 감겼을지, 22살의 나는 몰랐지만 37살의 나는 그때 엄마의 그 마음으로 널 생각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엄마는 아빠와 재혼해 널 낳았으므로 너와 나의 연결고리인 엄마가 없는 집에서 나는 이방인 같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반년 가까이 매일 밤마다 눈물바다였던 나는, 아빠가 너의 손을 잡고 친척 집에 가 혼자 남겨질 때면 더 이방인 같고 외롭다 느껴졌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대학교를 졸업해 사회인이 되면서 고시원 같은 원룸을 구해 첫 독립을 했고, 형편이 어려워져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 살기를 반복하며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가끔 집에 가면 어쩐지 꾀죄죄한 너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때 나는 내 슬픔과 외로움에 빠져 그게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아빠도 배우자를 잃고 방황했다는 것도, 내가 없던 시간 동안 너가 자주 혼자였던 것도, 아직 10살도 안 된 너가 학교에서 이가 옮아 따돌림을 당해 학교에 가지 않았던 것도, 엄마가 쓰던 핸드폰을 학교에서 잃어버렸지만 혼날까 봐 무서워서 얘기를 못해 한동안 연락이 안 된 것도. 모두 알지 못했었다. 


나중에 너가 커서 그 얘기를 했을 땐 가슴이 미어지고 또 미어졌다. 엄마를 잃기 1년 전부터는 병원이 집인 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지낸 아이였고 고작 8살에 엄마를 잃은 아이였는데... 어린 너가 감당하기 힘든 그 시간들 가운데 나만 생각하느라 네 곁에 없었다는 게 평생 네게 갚아야 할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마지막까지 널 걱정하던 엄마가 생각났고 나중에 엄마를 볼 때 ‘내가 잘 키웠어, 걱정하지마 엄마’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너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언니이자 엄마로 네 곁에 있어야겠다고.

네가 대학 수시 실기시험을 모두 마치고 대학에 합격했던 고3의 끝자락까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강남에서 의정부까지 꼬박 왕복 4시간이 걸리던 출퇴근길을 매번 서서 다니느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 시간을 네 곁에 있던 게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었다. 오롯이 널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 시간들이었기에.


* <오롯이 널 사랑하기까지>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언니의 글을 읽고 동생이 직접 그린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불펌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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