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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Sep 13. 2021

언니이자 엄마로


14살 어린 너는 내게 동생 그 이상의 존재였다. 

뇌암 후유증으로 비틀거리며 걷던 엄마는 혼자 나가는 게 두려웠는지 내가 집에 있을 때면 네 유치원 하원길을 같이 하자했고, 유치원 발표회도, 초등학교 예비소집일도 내가 함께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동아리 활동으로 거의 매일 저녁 술자리가 있었는데, 네가 장염이 걸려 입원했다는 엄마 문자에 총무였던 나는 ‘엄마가 있는데 언니인 네가 왜 가냐’는 핀잔을 들으며 바로 네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네 옆에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맛있는 냄새를 한껏 풍기며 국밥을 먹는 바람에 한껏 약 오른 네가 울고불고 난리를 부려 안 가느니만 못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너에게 뭘 해주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해 널 데려갔던 매직 버블쇼에는 돈이 없어 무대에서 제일 먼 뒷좌석을 예매한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고 싶어 앞좌석에 달라붙어 보는 네 모습이 빌려간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었다. 버블이 뒷자리까지 오지 않아 아쉬워하던 너의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듯하게.


네가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내가 긴 인턴생활을 끝내고 제대로 회사에 입사했을 때라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더 다양한 곳에 데리고 다녔다. 어린이날엔 어린이대공원에 가 놀이동산과 식물원, 동물원을 누볐고, 멀리 일산 킨텍스에서 하는 매직 포토(?) 전시회도 갔었다. 이 때는 싫다는 너를 고압적으로 서게 해 사진을 찍었기에 환하게 웃은 표정은 단 하나도 없지만, 남는 게 사진이라고 널 찍어둔 이 모든 순간이 내겐 보물로 남았다. 사진이 없으면 이때의 널 선명하게 떠올릴 수 없으므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부모 상담에는 마음껏 쉴 수 없는 건설직에 다니는 아빠를 대신해 연차를 써서 학교에 찾아갔고, 공부보다 미술을 좋아하는 너를 일찍이 미술학원에 등록시켰으며, 학업에 필요한 것은 다 해주려고 노력했다.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던 사회 초년생이라, 졸린 너를 깨워 조조할인으로 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 다녔고, 미술 전시회,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해주려 했다. 그게 그 당시 내가 해주고 싶던 보살핌이었다.


많은 경험을 해주려고 했지만, 나도 마음이 덜 자란 20대였기에 불안정했고 상처 주는 일이 많았다. 그 상처를 외면하려고 ‘나는 엄마가 아니야, 언니야. 그러니까 이 정도로 만족해’라는 생각을 가졌고, 네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결국 인생은 혼자이고, 내 앞날을 내가 책임지듯 너의 앞날도 네 스스로 책임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네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그 추운 날 야외에서 먹은 김밥에 꽉 체해 이틀을 앓다가, 돌아오는 길에 응급실로 직행해 링거를 맞고 집에 와서 끙끙 앓았을 때, 옆에서 배를 문질러주며 나는 걱정과 속상함으로 내 장이 꼬여감을 느꼈었다. 네가 속상한 일을 겪을 때면 마음이 저려왔고, 무엇보다 너를 위한 모든 것이 아깝지 않았다.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다 해도, 내 밥상에 밥 한 그릇 더 놓는 걸로 널 보살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을 보면,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널 사랑한 엄마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자랐나 보다.



* <오롯이 널 사랑하기까지>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언니의 글을 읽고 동생이 직접 그린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불펌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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