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민아씨 Oct 26. 2021

스며드는 걱정

네가 다니던 유치원에는 못된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는 네가 먹기 싫다는데도 강제로 김치를 먹으라며 순둥순둥 한 널 괴롭혔고, 한날 그걸 알게 된 나는 널 앉혀 놓고 “따라 해 봐” 라며 그 아이에게 싫다는 의사표현을 하도록 가르쳤다. 내 앞에서 곧잘 따라 하던 넌 결국 유치원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고, 그때부터 나는 네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혼자 기울어진 인간관계에 끙끙댈까 봐 걱정이 컸다.

네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새 학기 증후군으로 매일을 힘들어하며 울기도 하는 네가 걱정되어, 야근이 많은 회사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2주 정도 정시퇴근을 하며 널 돌봤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는 좋은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새 학기 증후군 없이 잘 지냈지만, 대학교 입학 때는 이미 개강 전부터 다들 친해져 온다는 소식에 외로이 학교를 다닐까 다시 걱정이 들었었다.

그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 너는 옆에 있는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어 친구를 사귀었고, 음주가무가 필수였던 나의 대학생활과 달리 과제하기 바쁜 너는 훨씬 생산적으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는 교수의 말에 상처를 받던 1학년의 너는 이제 어느 정도 네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3학년이 되었고, 언제나 네 의견을 상대에게 자신감 있게 표현하길 바랬던 나는 그런 너의 성장을 볼 때 마음이 놓인다.


네가 중학생 때였나. 언젠가 작은 이모에게 “내가 애를 너무 혼내 듯 키웠나.. 그래서 애가 주눅이 잘 드나” 라며 후회하는 마음을 고백한 적 있다. 그때 이모는 너의 성향이 본래 그리 타고난 것이니 자책하지 말라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지만, 네가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게 나로 인한 건 아닐지 늘 가슴 한켠이 미안함으로 뻐근했다. 쌈닭이 될 필요는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기 의견을 명료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던 나이기에 늘 네가 스스로의 감정과 의사를 잘 표현하길 바랬고, 그러지 못하는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말에 또박또박 네 의견을 얘기하며 대들었을 때, “그래! 그렇게 네 의견을 얘기하는 거야, 아주 잘했어!”라고 감동의 찬사를 보내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제는 나와의 어떤 대화 속에서도 위트 있게 대답하는 너로 인해 나는 늘 깔깔깔 웃게 된다. 몇 달 전에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갑자기 덩치 큰 남성이 다가와 내민 허접한 팔찌를 당황한 나머지 안 산다고 말하지 못하고 5천 원을 내고 사온 네게 “그런 걸 뭐 하러 사” 냐며 잔소리를 퍼붓자 너는 “내가 제일 속상해 그러니까 그만해” 라며 내 입을 다물게 했다. 내겐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너의 한마디였다.


네가 졸업 후 회사를 다녀보겠다고 했을 때는 네 재능이 아깝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일어나는 많은 감정 소모가 널 힘들게 하지 않을까 또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왔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단단해진 너를 떠올리며 네 결정이 무엇이든 응원하기로 했다. 이미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림으로 큰 회사에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던 너이고, 스스로 미술 관련 콘텐츠와 강의를 알아보고 도전해볼 만큼 자립심을 갖고 성장하는 너이기 때문에.

넌 늘 내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강한 아이였고, 네 나이였을 때의 나보다 더 뛰어났다. 너에 대한 나의 믿음은 변함없고, 어떤 선택을 하든 널 응원할 것이다. 그 결과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도전에 의의를 두고 부딪혀 보길 바란다. 주위에 휘둘림 없이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꺾이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네가 되길 바랄 뿐이다. 많은 길을 가보아도 된다.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 게, 내 맘같이 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


다만, 앞으로의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든 잊지 말았으면 하는,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 있다.

‘인생사 상호작용이니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할 것

‘사람이 재산이니 꼿꼿하게 나 잘났다며 남에게 상처주지 말 것’

물론 넌 그럴 아이이지만. 생각보다 타인에게 말과 태도, 행동으로 상처 주는 게 부지기수임을 느끼고 늘 뒤돌아 후회했던 경험자로서 걱정을 잡아매며 얘기해 본다.


* <오롯이 널 사랑하기까지>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언니의 글을 읽고 동생이 직접 그린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불펌하지 말아 주세요.


이전 08화 자신을 애틋해하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