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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Oct 19. 2021

자신을 애틋해하길


매회 오열하며 본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말이야 내가 애틋해,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도 네가…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어”


생각해보면 나는 네가 태어나기 전 외동일 때만 해도 스스로 애틋해하는 아이였다.


남아선호사상이 워낙 강했던 할머니 밑에서 집안 장손인 사촌 오빠와 함께 키워졌기에 더 두드러진 면이 있지만 나는 유독 할머니의 차별을 서러워했다. 할머니는 특히 밥상머리 차별이 심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더 많은 양을 먹어야 하는 나이이긴 하나 그때는 몰랐으므로) 나보다 네다섯 살 많던 사촌 오빠에게 소시지나 햄 반찬을 더 많이 주었고 고기도 오빠 앞으로 놓아주는 등 어린 손녀 마음에 금이 쩍쩍 가게 만드는 손자 사랑을 보이셨더랬다.

기억도 가물한 어린 시절 생일에는 케이크 없이 슬그머니 지나가는 엄마에게 땡깡을 있는 대로 부려대고는 골목 끝집 대문 앞에 30분을 숨어있었다. 그 무렵 같은 동네 아이들 중 일부는 집이나 동네 햄버거 가게 같은 곳에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하곤 했는데, 나는 파티는커녕 케이크도 없었으니 얼마나 서러웠겠나.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 때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 대신 외숙모가 오셔서 사진을 찍어줬는데,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오지 않았던 게 너무나 서운했었다. 그날 외숙모가 찍어준 사진 속에는 위아래 샛노란 깔맞춤 운동복을 입고 입이 삐죽 나와 토라져 있는 내 얼굴이 쓰라린 마음과 함께 고스란히 남았다.

더 커서는 내가 좋아한 혼성그룹 쿨 앨범 테이프를 사달라고 하자 엄마는 당시 만연하던 리어카 짝퉁 테이프를 사다 줬는데, 그걸 알고는 이게 뭐냐며 다시 정품 사달라고 발광하는 바람에 엄마가 한숨을 쉬며 테이프를 사러 나갔다 오기도 했다. 외동이었기에 모든 것들이 내 위주로 돌아갔고 나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꽤 클 때까지 아침에 ‘나 일어났어요’ 신호 보내듯 어리광을 부리며 일어나곤 했으니 어지간히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긴 셈이다.


그러던 내가 달라진 건, 내가 중학생 때 네가 태어나고 엄마가 암으로 편찮아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꽤 늦은 나이에 널 낳았고 아픈 몸으로 집안 일과 육아를 해야 했기에 엄마는 내게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다. 줄곧 새벽에 혼자 일어나 준비해 학교에 갔었고, 고 3 때는 야간 자율학습이 자정에 끝나던 무렵에도 혼자 버스를 2번 갈아타고 집에 걸어왔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왠지 부모님이 오기 힘들 것 같다고 제멋대로 생각하곤 오지 말라 했고,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마무리했다. 졸업식날 받았던 수학 성적 우수 상장을 편지지처럼 곱게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친구와 영화관에 갔던 게 유일한 졸업식 기억이다.


그랬던 내가 네 초중고 졸업식엔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꼭 참석했다.

네 초등학교 4학년 운동회 때는 연차를 내고 가서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네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고, 필름으로 찍어 인화까지 해 주는 바가지요금 사진을 찍기도 했다. 대학교 수시 실기시험에도 거리가 가까워 아빠만 함께 갔던 한 군데를 제외하곤 모두 같이 갔고, 무슨 일이든 네가 애틋해서 함께 있어주려고 했다. 나에겐 네가 나보다 애틋한 존재이다.


나보다 애틋한 너라는 존재를 통해, 나는 이제 타인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으로 바라보게 된다. 너는 내가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는, 한층 더 관대하게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자 마음의 토대가 되었다. 한없이 이기적이었던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네가 내 옆에 있는 덕분이다. 


때문에 너는 네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서도,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도, 네가 애틋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 속에서 엄마와 아빠, 나에게 있어 너는 자기 자신마저도 대신할 수 없는 애틋한 아이이므로.


* <오롯이 널 사랑하기까지>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언니의 글을 읽고 동생이 직접 그린 아주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불펌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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