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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 off Jun 30. 2024

놀고 먹고 싶어요.

슬쩍 등떠밀기의 기술

" 아니 놀고 먹고 싶다니 말이 돼?그게 직업이냐고? 아니 꿈이 없으면 일단 공부라도 해야지. 답답하다. 정말"

커진 친구 목소리에 옆테이블 커플이 슬쩍 우리를 본다. 애매하게 웃으며 친구 손을 잡지만 표정이 지나치게 진지하다.

부모들이 듣고 싶지 않은 가장 충격적인 말, 그말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다 싫다. 놀고 먹고 싶다."
유사표현으로 "건물주가 되고 싶다." 등이 있다.

공부는 하기 싫으니 다른 걸 하겠다는 것은 한결 수월하다. 예전과 달리 공부말고도 살아갈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기꺼이 다른 진로를 만들어줄 다짐을 한다. 하지만 놀고 먹겠다는 것은 노후 대비를 하기도 벅찬 부모에게 캥거루족 유망주가 되겠다는 선언이므로 가히 충격적이다.

이럴때 부모는 어떤 기술을 써야하는가?
너는 다 잘해낼 수 있으니 힘을 내라고 해야하는 것인가. 시대가 변했으니 놀고 먹을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자고 해야 하는 것인가.
어른인 나의 꿈도 종국에는 놀고 먹는 것이니 같이 놀자고 해야하는 것인가.
(같이 놀고 먹을 각오를 위한 건물은 어디에도 없다.)
혹시 우리 아이가 진짜 백수가 되는 건 아닐까하는 겁도 나는 것이 사실이다.

'놀고 먹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상담하면 대부분 뭐부터 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거나 미래가 너무 불안할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고통을 감각으로 '회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듯 보였다. 어릴 때 시험 범위가 너무 많을때, 시험 전날 갑자기 다 포기하고 더 놀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완전히 무기력해서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회피와 포기는 다르다.
비바람이 칠 때  단단한 기둥에 한 쪽을 잡고 잘 버텨주면 깃발이 대부분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회피라는 것도 부모가 잘 버텨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슬쩍 등떠밀기'라고 한다.

부모로써 마음 편할 수 없지만 한숨 한번 크게 쉬고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천천히 살피며  대놓고 '놀면 뭐해 공부라도 해'가 아니라 작은 성취에 크게 의미를 담는 진정성 기술이다.
이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하면 주기적으로 계속해야 한다. 아이들이 혼자서 '성취동기'를 만들어 '자기 존중감'을 만들기 쉽지 않으므로 생각날때마다 슬쩍 슬쩍 '의미'를 쌓아준다.

" 너 중학교때 그 친구랑 화해하는 거 어떻게 했어? 그때 엄마는 더 달리 보이더라."
" 너는 쭉보면 지금까지 힘들어도 뭐라도 하더라."
" 니가 아무것도 한 거 없다해도 속으로는 얼마나 스트레스였겠어. 그게 많이 한거지. 얼마나 머리가 아팠겠어."

처음엔 부모의 말을 믿지 않고 멋쩍어 하지만 자주해주면 금세 부모의 말을 믿고 성취의 방향을 잡아간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일단 오늘도 쓴다. 잘 보이지 않고 잊히기 쉬운 작고 희미한 것들을 통에 담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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