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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Sep 15. 2024

형제라는 진로장벽

형이 서울대 다녀요.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아버지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신다. 말도 안 된다며 웃고 넘길 수도 있지만 삶과 죽음 그리고 상처는 의외성에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자주 막막하고 길을 못 찾고 두리번거리다 좌절을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진로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들도 종종 길을 잃고 주저앉아 손을 잡아주질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그 상황을 '진로 장벽'이라고 한다. 제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이는 아이들도 벽을 만나곤 하는데 그 모진 벽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특히 형제는 자주 '진로 장벽'이 된다.

처음 학교에서 본 고1 때 D는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밝고 붙임성이 좋고 선생님들께도 잘해서 평판이 좋고 누구나 호감을 가지는 아이였다. D는 다른 이유로도 유명했는데 같은 학교를 졸업한 형이 서울대를 가서였다.

어쩌다 이야기를 하게 되어  "형이 좀 신경이 쓰일 것 같은데 괜찮아?"라고 물었을 때 웃으며 친구도 좋고 축구도 좋아서 괜찮다고 이야기해서 그럴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말을 들어보니 부모님도 여느 부모님처럼 형제의 등수를 매기는 어른들은 아닌 것 같아 심리검사, 진로 검사 결과지를 보고 전공계열을 안내하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2학년이 되기 전 선택과목을 결정하는 시기에 상담을 하러 온 아이의 얼굴이 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견고한 진로 장벽을 만나 마음이 많이 무너져있었다.

"선생님들이 저랑 형이랑 너무 비교해요. 엄마도 점점 뭐 하고 싶냐고 자꾸 물어보시고.. 저는 학교가 늘  좋았거든요. 제 성격상 경쟁도 싫고 그냥 운동하고 학교 잘 다니고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지내면 안 되나요? 엄마가 꿈이 없고 선택도 못한다고 좀 한심하게 보는 것 같고 공부는 하고 있는데 집중이 안되고 답답하고 하기 싫고 그래요."

확실히 몇 개월 만에 D는 그 아이 특유의 생기나 개성을 잃어버린 데다가 예전과는 다르게 웃지도 않았고 자주 한숨을 쉬었다.


D의 경우처럼 공부 잘하는 형제는 앞으로 향하는 데 벽이 된다. 형제와 비슷한 결이라 비슷한 진로를 찾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성향, 성격, 강점이 형제들끼리 매우 다르고 타고난 성향을 담는 마음 그릇의 크기도 다르다. 그 그릇에 담을 내용물이 물인지 밥인지도 다른데 형제라고 비슷한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주변 어른들의 압박과 간섭들은 잔소리가 되어 그릇을 깨뜨리기 쉽다.

"선생님. 사실 점점 형도 싫고 밉고 그래요."

"D야.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선생님도 비교당하면 열등감도 생기고 뭐든 하기 싫고 그럴 것 같다. 비교되면 좋을 기분인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지.. 그런데 선생님 보기에 오히려 마음 그릇이 넓은 사람들이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생각해. 넓은 그릇을 가지고 있으니 채워야 할 부분도 많아서 늘 채워야 하는 거지. 좁은 그릇은 금방 차고 넘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 부족하다는 그 마음이 너를 성장하게 할 거야. 천천히 꿈을 찾아보자."

이렇게 말을 시작하고 일단 좋아하는 운동과 관련되는 학과를 소개하고 선택 과목을 결정하는 걸 도왔다. 실기를 준비하는 학원에도 다녀오게 하고 3학년 선배들 중 체육 실기를 준비 중인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게도 했다. 일단 D는 행동으로 벽을 넘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웃으며 그릇이 차곡차곡 채워지길 기다리는 중이다.


늘 진로장벽을 만난 아이에게는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방안을 준다. 그래야 덜 막막하고 말로 하는 '너는 괜찮다. 잘할 수 있다. '는 자칫하면 그 아이가 가진 좋은 진로 발전 성향을 막을 수 있다. 이미 D는 누구보다 대인관계역량은 좋은 기초를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넓은 그릇을 채워가는 연습부터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해주면 좋겠지만 진로 상담을 하는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을 늘 고민하게 되는데 어른으로써 너무 먼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힘을 주기보단 일단 장벽 때문에 뒷걸음을 칠 수 없도록 뒤에서 버텨 주는 노력을 하는 편이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고 구겨져도 1달러는1달러다. 인간도 그렇다.

어른인 나는 늘 다짐한다. 개별적인 자아를 깊게 보자고. 같은 집안에 같은 부모밑에 자라도 다 다르다. 부모 입장에서는 첫째가 성과가 좋으면 그것 자체가 성공경험이 되기 때문에 둘째도 같은 방법으로 진로 지도를 많이 한다. 그런데 둘째가 성향이 달라 거부하면 형은 수월했는데 너는 뭐가 부족하냐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부모의 태도는 결국 진로장벽이 되고 아이들을 숨게 만들고 도망가게 만든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금만 장벽을 낮춰주고 뒤에서 안아주고 버텨주면 스스로 그 장벽들을 넘어섰다.

부모의 욕심으로 자식들끼리 서로 멀어지고 열등감을 부추기고 이겨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일은 아이들 그릇을 차버리는 일이다. 개도 먹던 그릇은 차면  반항한다. 심지어 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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