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보고 잘못했다는 거지? 내 탓하려는 건가? 나 지금 돈 없다고 무시하는 건가? 나 여자라고 (혹은 남자라고 아이라고 나이 많다고) 무시하나? 사람들이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 자신에 대한 평가, 비판에 집중된 시선은 요런 요술을 부린다. 평가에 비판에 수치심이 보태져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폭설이 내리면 몸이 갇히듯 가벼운 눈송이로 시작된 생각이 눈덩이로 불어나면 압도되고 짓눌린다. 이런 내면적 역동, 남이 뭐라 한 적도 없는데 내가 만들어낸 거대한 부정적 생각을 '확대해석, 과잉해석'이라고 한다. 어깨에 내린 가볍디 가벼운 눈송이를 살짝 털면 아무것도 아닌데 차곡차곡 모아 눈덩이를 만들어 던지면 멍이 들듯 과잉 해석이 마음 습관으로 자리를 잡으면 만성 우울, 만성 불안 등의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집 앞 눈을 쓸듯 생각은 그냥 흘려보낼 수만 있으면 덜 아프다.
하지만 꿈과 진로는 확대해석이 필요하다. 나는 꿈을 찾는 과정에서는 확대해석을 도우는 편이다. 과잉으로 의미를 찾아준다. 무턱대고 칭찬하는 것과는 다르다. 꿈을 이루는 과정을 찾게 하고 그 해석을 스스로 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집중한다.그래서 학기말에는 반드시 드림북을 만들고 꿈 발표를 한다. 자기 이해를 하고 관계역량을 고민하고 꿈을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점검하고 진학할 대학을 꿈꾸고 내년에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구상하는 것이다. 김장을 해서 내년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은 학기말에 내년치 고민을 한다. 여태껏 작성한 자료를 드림북으로 꾸미고 발표를 하면 서로가 몰랐던 진로 성향, 진로 가치관, 진로 자존감을 살피고 나와 타인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이점이 있다. 질문하고 서로를 칭찬하면서 점점 불어나는 꿈 이야기를 지켜보는 내내 흐뭇하다. 아이들은 꿈 발표를 하며 영상도 제작하고 랩도 하고 춤도 추며 꿈 축제를 벌이고 선생님들도 참여하여 꿈을 계속 확대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 재해석을 도와준다.
올해는 새로운 발표를 해서 고정된 생각에 틈을 내는 아이가 있었다. '연봉'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발표였는데 최근 변우석이 드라마 한 편 성공으로 100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인생은 돈이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 해서 서른이 되기 전 큰돈을 벌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차곡차곡 스스로를 알아보고 행복한 진로를 만들어 가기를 바랐던 내 꿈이 100억에 밀리는 순간이었다. 눈을 뭉치던 시린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만든 눈 사람이 다 녹아버려 속상한 마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최근 몇년사이 아이들의 꿈 발표는 돈 이야기를 만나면 소신은 쪼그라들고 포부는 바람이 빠졌다. 연봉이라는 현실이 행복한 진로 꿈꾸기에 찬물을 한 바가지 부어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애써 내 꿈을 확대하고 키워도 떳떳하게 살아도 돈을 못 버는 것은 무능하고 게으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꿈으로 가는 여정에 힘이 덜 빠지게 하기 위해 행사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보태었다. 마음 구석의 말들을 끌어 모으고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서 임승수 작가의 말을 인용했다.
"자본가는 이윤이 되면 노동자를 고용하며 고용이 안되고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게으르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본가의 이윤 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꿈이 전부 자본주의에 딱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힘든 처지를 아니깐 최저임금을 올리기에 애쓰고 우리끼리 서로의 삶을 챙기며 살고 있다. 모두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돈을 가치롭게 생각하는 일부 어른들에게 무의미해 보여도, 모두에게 100억은 못 벌게 해 주더라도, 사력을 다해 꿈 찾기를 도우고 꿈을 확대 과잉 생산해서 피해 의식 없이 각자의 꿈에 닿기를 바라며 이렇게 진로 선생님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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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행복해지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러니 나는 아마 앞으로도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사회주의자로 생을 이어갈 것이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