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있다. 아이들 몸도 마음도 추워진다. 겨울방학과 동시에 학기말 내신 등급 결과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아이들은 이맘때 대체로 시름이 가득하다. 어두운 표정을 살피며 '아니야. 열심히 했잖아'로 따스하게 감싸주고 싶지만 냉정하고 날 선 등급 숫자가 박힌 성적통지표가 그들을 압박한다. 아이들이 성적이라는 결과와 상관없이 학교 생활 자체를 즐기는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체로 모든 아이들이 정도 차이는 있지만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을 보는 사람들은 절대 "너 내가 공부하라고 했지? 후회할 줄 알았어"이런 말을 못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자주 하는 말이다. 말이 쉽지 보상 없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일 어려운 일이다. 어른은 힘들어도 월급을 받으니 일을 계속할 수라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보상은커녕 노력한 시간을 휘발시킨 매정한 결과 종이만 받아본다. 과정이 사라지는 아득한 일을 고스란히 겪지만 오늘도 살아낸다.
학기말, 후회 가득한 아이 표정을 살피며 '열심히 했으니 내 노력은 참으로 의미 있어, 결과랑 상관없이' 말고는 더 할 말이 없을 때 난감하고 무기력하다. 뻔한 위로를 싫어하는 편이라 그래도 꾸역꾸역, 요리조리 궁리해서 다가갈 말을 찾는다. 노력해도 계속 힘내라 정도밖에 못하는 내가 급기야 못마땅해진다.
그렇게 더듬거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 자신이 늘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뻔하든 관성적이든 뭐라도 하는 과정을 중시하기보다 결과적으로 아이를 변화시키겠다는 욕심,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묶여 있었구나.
그날 이후 나는 변했다. 큰 목표나 결과를 바라지 않고 꾸역꾸역 아이들이 한 일에 '의미 꼬리표'를 달아준다.
[과학 수행평가 잘했던데 그 실험에서 뭘 느꼈어? 동아리장을 하면서 힘들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했어? 지난번에 발표 진짜 잘하더라. 비결이 뭐야? 또래 멘토링 잘하고 있어? 친구 잘 가르치는 방법이 뭐야? ]
내 질문들이 내신등급을 어메이징 하게 올려주지는 못해도 아이들 각자 스페셜하게는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이 정도 결과는 바래도 되겠지. 오늘도 꾸역꾸역 요모조모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스페셜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