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믿음이라는 경계선
선생님. 인생은 한번 뿐이잖아요.
" 아빠는 한 번이라도 날 믿은 적 있어?"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주인공 하빈은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들 다르다. 머리는 좋지만 타인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다. 드라마는 부모의 편견과 사랑을 교차시키며 긴장감을 높인다. 상담을 오는 아이들이 엄마와의 관계 이야기를 많이 하기에 드라마를 보는 동안 습관적으로 하빈이 엄마의 태도를 눈여겨보았다. 나름 직업병이다. 주인공 딸이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라서 저런 행동을 한다라는 한 줄로 정리되기에는 많은 함의를 담은 드라마로 보였다.
하빈이 엄마는 처음에는 증거와 사실로 아이를 판단하는 아빠와 달리 딸을 감싸고 아빠의 불신에 상처받을까 이혼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냉담한 아이를 마주한다. 딸이 남과 다르다는 절망적 진실 앞에 마음은 균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신과를 찾는다.
"선생님 저는 하빈이 가 평범하게 살길 바래요."
친구를 원하지 않는다는 딸의 말을 수용하고 싶으면서도 친구가 있으면 평범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 사이에서 엄마는 점점 파괴된다.
최근 나에게 놀러 오는 아이가 있다. 새로 만든 상담실 소파가 편해 마음에 든다며 친구랑 늘 같이 와서 수다를 떤다. 내가 봐온 아이는 '일상적 행복'을 가장 중시했다. 학교에 친구들과 놀고 장난치고 수다를 떠는 것이 너무 행복하단다. 성적은 중간 정도이다. 밝고 다정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하루는 뜬금없이
"선생님. 인생은 한번뿐이잖아요. 전 즐겁게 살고 싶거든요. 우리 엄마는 저랑 성격이 정반대인데요. 진짜 엄마는 너무 빡빡해요. "
이 말을 하고 친구랑 놀더니 그냥 진로실을 나갔다. 발랄하게 떠들며 놀던 아이들이 나간 공간은 멈춘 듯 보이고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렇게 드라마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고민이 깊다. 부모는 항상 경계선에서 위태롭다. 아이를 무조건 수용하자니 다른 사람보다 뒤처질 것 같고 미래도 없어 보인다. 아이를 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니 지나친 간섭인가 싶다. 부모는 미래 앞에 불안하고 서성인다. 선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나름 아이들을 만나는 내가 판단하기엔 내 인생의 고민에서는 하는 것이 맞고 남에게 하는 말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는 대체로 말을 아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선을 넘지 않을까의 고민이 된다면 무조건 선을 넘는 것이다. 참아야 한다.
드라마 속 냉혹한 하빈 이를 보며 소설 아몬드가 같이 떠올랐다. 소설 속 남자아이도 하빈이 처럼 감정이 없다. 아몬드 엄마는 강요하지 않고 곁에서 아이를 무조건 수용하며 감정이 돋아나길 기다린다. 마침내 아이는 자신에게 들어맞는, 자신을 지켜내는 감정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독특한 방식으로 삶을 지켜낸다. 내가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도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괴로워하지 않고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낸다. 자기만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주체성이 가득하다.
결국 아이들은 무조건 '스스로'가 된다. 부모가 할 일은 그저 믿어주는 일뿐이다. 신에 대한 믿음이 그렇듯 대부분의 믿음은 늘 우리를 시험한다. 시험에는 만점과 영점 사이에 제각기 다른 숫자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