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설계.
그 과정은 다사다난했을지 몰라도 나는 아직 이 일을 하고 있다. 햇수로는 벌써 15년이 다 되어간다.
사실 나도 이렇게까지 오래 이 업계에 몸담고 있을 줄 몰랐다. 언제든지 튀어나갈 마음은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일에 대한 매력에 점점 빠지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 매력이란 뭘까..?
음.. 먼저 말하자면 이 업계는 박봉이다. 이걸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버니까 그걸로 버티는 거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설계는 들이는 시간이 비해 많이 벌진 못한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오늘 회의에서 수정사항이 발생했는데, 내일 오전에 보내주세요~라고 하면서 야근을 하는 일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정사항이 생각보다 많기에 '이걸 왜 아직도 수정을 해야 하지?'라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렇지만, 그 박봉을 넘어서는 이점이 있으니 아직도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것은 성과가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현장을 둘러보고 조사를 하고, 그에 맞게 설계를 한 뒤 도면으로만 되어있던 것들이 현실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면 괜히 모를 뿌듯함이 생긴다.
그리고 설계를 완료하여 성과품을 납품할 때, 고생한 것들이 그 안에 다 녹아져서 한 권의 도서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드디어 이 일을 끝냈구나.' 하는 개운함이 든다.
뿌듯함과 개운함. 이 두 가지의 기분만 해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신입시절 빠듯한 납품기한에 쫓겨 철야를 하고 해가 뜨는 창밖을 보면서 최종으로 인쇄된 도면을 확인할 때의 기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직원들 간의 관계이다.
남자들만 있는 세계였기에 어찌 보면 '차별'이라는 것이 인식조차 되지 않았을 그런 사회에 이성인 내가 들어온 것이었다. 여자는 안돼,라는 고정관념 속에 등장한 여성이었기에 더 튀었을진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것이 많았다. 여자이기에, 나이가 어리기에 받는 시선들은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생활하다 보면 여자이기에 배려를 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공대의 특성상, 업역의 특성상 여자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고, 이 사람들이 겪는 문제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를 하면 '아, 그런 불편함이 있구나?, 그런 문제가 있구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고쳐주려고 하는 모습들이 보였고,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다.(예외인 경우도 종종 있지만)
사실, 대기업에서나 공기업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중소기업, 중견기업에서는 이런 모습들이 많이 보이기에, 그리고 능력이 있으면 존중해 주는 그런 동료들이 있기에 충분히 이 일을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