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추위가 지나고 뛰기 좋은 날씨가 찾아왔다. 겨우내 입고 달리던 경량 패딩을 벗고 티셔츠 하나만 입고 달릴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 그래도 반년 동안 뛰었다고 날씨가 좋아지자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10km를 한두 번 뛰어 보기도 했고 20km를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항상 뛰던 운동장에서 20km를 뛰기에는 너무 지겨울 것 같아 거리가 좀 있더라도 하천으로 나가기로 했다.(운동장에서 20km를 뛰기엔 무려 50바퀴를 뛰어야 했다. 같은 풍경을 보며 50바퀴……, 상상만 해도 재미없다 느껴질게 뻔했다.)
3월의 날씨가 좋던 어느 평일 오전,
미리 지도를 통해 찾아놓은 곳에 주차하고 몸을 풀었다. 무리하지 말자, 만약 뛰다가 정말 힘들면 걷다가 다시 뛰자, 그래도 못할 것 같으면 택시라도 타고 돌아오자 마음을 먹은 뒤 하천으로 내려갔다. 오래 뛰어야 하니 체력 안배를 잘해야 했다. 평소에 6분 30초대의 페이스였으니 7분대로 늦추되 박자감을 유지하며 달렸다.
언제나 비슷한 풍경만 보며 달리다가 탁 트인 하천에서 다양한 풍경을 보며 뛰니 기분이 상쾌했다. 그리고 봄의 상쾌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니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숨이 차올랐지만 오히려 몸은 가벼워졌다. 이대로라면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7km쯤 갔을 때 고비가 왔다. 반환점으로 정해놓은 건물이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이쯤 달렸으면 건물이 커져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뛰어도 뛰어도 그대로야? 그래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겠지 싶어 힘을 내보았다. 하지만, 건물은 나와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이동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결국 마음을 비워버렸다. 시계가 거리를 알려주리라 생각하며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뛰었다.
어느덧 반환점으로 정한 빌딩 앞에 도착했고, 약간의 허기가 몰려와 챙겨갔던 액상 아르기닌을 하나 먹고 다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 쓸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천천히 뛰었지만, 결국 반환점을 돈 지 얼마 되지 않아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다리는 내 생각과 다르게 삐걱거리고 있었고 상체는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상체가 무너지면 몸에 힘이 풀린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 상체를 계속 유지하려고 애를 썼지만 몸은 점점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대로면 다리가 풀려버릴 것 같아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뛰자. 그 생각으로 숨을 고르며 주변의 경치도 다시 둘러보며 200~300m 정도 걸었다. 헉헉거리던 숨이 다시 안정되고 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다시 달렸지만 한번 풀려버린 몸은 다시 돌리기 어려웠다.
어찌어찌 15km를 지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에 끝까지 뛰어보기로 했다. 이미 다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알 수 없는 속도로 가고 있었다. 100m가 1km처럼 느껴졌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게 느껴지니 그만둘 수 없었다. 꾸역꾸역 달려 다리만 건너면 되는 순간 시계에 표시된 거리를 보니 19.5km, 0.5km가 남아있었다. 그 순간의 좌절감이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았다니. 결국 차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500m를 겨우 채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첫 20km의 페이스는 7분 47초, 총 완주시간 2시간 25분 36초였다.
다 뛰고 난 뒤 생각난 것,
마라톤 하프가 21.0975km인데, 그걸 까먹고 20km에만 집중해서 하프기록은 아쉽게 못 채웠다는 점. 그리고 한번 뛰고 났더니 또다시 도전할 엄두가 잘 안 난다는 것.
장거리를 뛸 때는 물을 꼭 챙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뛰고 났을 때 성취감이 크다는 것이다. 체력을 좀 더 키워서 올해 가을에는 꼭 하프를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