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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05. 2022

리틀 포레스트 말고, 리얼 포레스트

제 1 화


  《이끼》가 아니라 《리틀 포레스트》라고?



비수도권, 지방으로 뭉뚱그려지는 시골은 대체로 미개한 사람들이 극악무도한 짓을 벌이곤 하는 사건의 배경지로써 영화 《이끼》에 가까운 이미지였는데. 어느 순간, 힐링의 대명사 《리틀 포레스트》가 되어 있었다. 대항해 시대, 바다를 정복하기 전 유럽인들에게 미지로 인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대륙이 식민지로 전락하기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지는 두렵지만 정복은 인식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낙원이 된 제3세계 국가들과 그들을 위해 관광업에 종사하는 국민들. 나는 '비도시'와 그에 속한 사람들의 삶이 식민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농촌은 미개하고 고리타분했다. 누군가에겐 지금도 그러하고, 동시에 가능성의 땅이었다. 도시에선 찾아볼 수 없는 자연과 더불어 어떤 치유의 심벌이 되어버린 귀농. 복작거리는 서울에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의 심경 변화일까? 모두가 산란기 연어처럼 뭔가를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것 같다. 고향도 아닌,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은 것 같다. 마치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은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안정"이라는 욕망을 갖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한평생 도시의 인프라를 누리던 사람에게, 시골은 과연 《리틀 포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리틀 포레스트》는 분명 재미있는 영화다. 저 맑은 시골의 풍경은 당장이라도 나를 해방시켜줄 것만 같다. 미국에 가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시대의 아메리칸드림처럼! 상경하기만 하면 내 인생이 고속도로처럼 쭉 뻗을 것 같던 그 시절의 희망처럼! 《리틀 포레스트》는 '생존'에 찌든 나를, 여드름에 좋다는 유기농 어성초 비누 따위의 천연재료(하지만 근거는 없는)로 빡빡 빨아서 볕 좋은 마당에 뽀송뽀송하게 말려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람들은 한참, 그런 환상을 유행처럼 소비했다.



  힐링은 돈으로 살 수 있습니까?



당신이 편안하지 않다면, 당신의 돈이 부족하진 않은 지 확인해보세요! 언젠가 SNS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 난 이 문구에 격하게 동의하진 않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어느 정도 맥락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리틀 포레스트》의 혜원(김태리 분)은 힐링에 최적화된 집이 있다. 영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랄까? 시골엔 내 고민을 나누어질 또래 친구들도 없고, 고난은 영화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주택은 생각보다 관리가 번거롭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직접 기른 작물과 맛있는 음식은 뚝딱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최고의 힐링은 역시 치킨에 넷플릭스가 아니었던가? 지역을 막론하고 공감할 진리가 아닌가? 농촌에 늘 힐링과 치유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끼》 시절의 농촌을 바라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건 조금 더 긍정적인 방식의 편견일 뿐이니까. 힐링은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돈이나 집이 없어서 불행하다는 1차원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 이 밈과도 같은 명제에 크게 공감하지 않는 바도 크다. 도시의 행불행이 공존하고, 그것들이 다양하게 다루어지듯이 분명 '비도시'에도 있다. 행복과 불행, 그 모든 것이 있다.


'비도시'라는 말은 자주 쓰게 될 것 같다. 나는 담양을 예로 들어 에세이를 계속 써 나갈 거지만, 그렇다고 농촌으로 한정 짓기에 이 이야기는 어촌, 산촌에도 유효하니까. 또 농촌, 어촌, 산촌을 모두 포괄하기에 시골이라는 단어는 너무 협소하니까. 도시와 시골에는 표현되지 않는 비약이 많다. 때문에 앞으로도 에세이에선 종종 '비도시'라는 말로 정의할 예정. 물론 내가 만든 단어는 아니고 원래 쓰이는 단어이다. 다만, 내가 쓰려는 의도에 맞게 재정의한 부분이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담양.



우중충한 날씨와 무성한 잡초. 도무지 아름다운 풍경에 협조해주지 않는 뒷집 대나무 공장. 정말. 담양 아니랄까봐, 우후죽순도 아닌 사람만한 우후유채꽃을 볼 수 있다. 하루 이틀 여행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이 뜬금없음이 시골의 묘미다. 광주 공항행 비행기가 굉음과 함께 잿빛 하늘을 가로지르고, 나는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거미줄을 걷는다. 반복. 반복. 반복. 한결같이 아름답고 한결같이 지루한 이 풍경. 가끔 불행하고, 또 가끔 행복한, 내 삶이라는 여정에서 닻을 내리는 항구에 관계없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진지하고 생각이 많아서, 대학교 과제 같은 에세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 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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