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심각 단계 격상 후 과거의 자신과 거리두기>
인생에 ‘당연한 것은 없다'며 '현재에 감사하다'는 일기를 남긴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걸 또 몸소 느끼게 해 준다.
미국의 상황은 급격하게 나빠졌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일을 해도 안 해도 불안한 나날들.
결국 휴직을 선택하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환경에 3월 스케줄이 끝나는 대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20년 3월 16일. 자정 무렵 일을 마쳤는데 갑자기 바로 가기로 결정한 바람에 짐 챙기느라 거의 밤을 새우고 다시 공항으로 갔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하루아침에 공항이 셧다운 될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다급한 마음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나 혹은 가족이 곁에 있었다면 나는 집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도 없으니 미국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휴직을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룸메이트는 계속 일을 한다고 했다.
마스크도 못쓰고 일하는 일터(글을 쓴 시점의 상황, 현재는 착용 가능)에서 안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을까 봐 불안한 와 중에 그녀가 하는 말들에 말문이 턱 막혔다.
각자의 상황이라는 게 있고 스스로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기에 수긍하고 같이 사는 공간을 당분간 떠나게 되었다.
마스크는 처음부터 구경도 못했거니와, 3월 초에 손세정제를 열 군데 이상 돌아다녀서 겨우 조금 구했다가 그 이후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3월 중순에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로 사람들이 사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휴지라는 휴지는 다 싹 쓸어 갔다.
내가 한국에 온 이후에는 고기, 채소, 계란, 냉동식품 등 먹을 것도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리저리 다니며 서글퍼서 울컥했다.
눈치 보며 비행기에 탔는데 말 한마디라도 따듯하게 챙겨 주는 크루들에 고마웠다.
영화 Judy를 보면서 서러운 마음이 올라왔고,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핸드폰에 있는 미국에서의 지난 사진들을 훑어보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앞일이 막막하여 답답한 마음도 크다.
다시 미국에 처음 간 느낌이다.
엄마 집에 오자마자 선별 진료소에 가서 검사받고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계속 쓰고 엄마와도 거리를 두려 애쓰느라 침대에서 보낼 때가 많았는데 무력한 시간이었다.
시차도 적응이 안되어 밤낮으로 자다가 남는 시간에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이나 영화를 몰아서 볼 법도 한데,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불안한 마음에 실시간으로 뉴스나 페이스북 미국 승무원 그룹 포스팅을 확인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두통이 심하게 있었고, 또 지금 아니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집에 있었으면 혼자 무서웠을 텐데 엄마가 한국에 오라고 해 줘서 고마웠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바깥공기를 마시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제 하루 온전히 나의 자유시간이 생기면서 무언가 하고자 하는 욕구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에너지와 봄이지만, 자취를 감추기 전에 만끽해야지!
정리하고 보니 할 일이 꽤 많다.
과거의 자신과 거리를 두며 내 삶의 기록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