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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Mar 26. 2022

디아스포라

영원한 이방인(by 이창래)


디아스포라...

언어적 관점으로 본다면 특정 개념에 대한  단순한 기표임이 분명할 진데, 마음이 아리고 애달픈 것은 시니피앙의 저변에 있는 시니피에가 애환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소수의 타자를 고립시키는 다수의 폭력, ‘다름’이 곧 ‘차별’과 동의어가 되는 문명의 장, 여기 한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그 이기적인 공간 속에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당신은 숨기는 게 많아/ 인생에서는 B+짜리 학생/ 무엇보다 바그너와 슈트라우스를 흥얼거리는 사람/ 불법외인/ 정서적 외인/ 장르광/ 황화(黃禍): 신미국인/ 침대에서는 훌륭하지/ 과대평가되고 있음/ 파파보이/ 감상주의자/ 반 낭만주의자/ ______분석가(빈칸은 스스로 채우도록)/ 낯선사람/ 추종자/ 반역자/ 스파이(20)”


이상은 이민 1.5세대인 헨리 파크(박병호)에게 아내인 릴리아가 여행을 떠나며 남겨준, 그에 대해 간간히 작성해온 고유어 목록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우연히 찾아낸 종이조각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21)”이 있다. 이 목록 중 반 이상의 고유어가 헨리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마디마디 속에 녹아 있다. 특히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은 삶의 현장인 미국, 뿌리를 둔 한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이 불확실한 자에 대한 섬세한 메타포다. 이 목록으로 헨리는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를 맞게 된다.


헨리 파크의 직업은 사설업체의 스파이다. 의뢰인의 주문을 받으면 한 개인의 주변인으로 잠입하여 사적이든 공적이든 의뢰인에게 가치있는 정보를 빼오는 것이다. 헨리가 최근에 맡은 의뢰는 이민족인들 사이 정치적 영웅으로 부상하고 있는, 시의원 존 강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릴리아와의 불화와 존 강에 대한 정탐의 물리적 여정에서 헨리 파크의 뇌리에 떠오르는 부모님 특히 아버지, 죽은 아들 미트, 가정부에 대한 지난 날의 상념, 즉 정신적 여정으로 이어진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야기의 뼈대는 웅장한 상징들을 토대로 구축되어있다. 정교한 단서가 지시하는 상징들,개체 하나 하나를 따라가 보면 작가의 사상적 배경에 이를 것이다.





헨리의 불확실한 정체성을 알려주는 단서들


"…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 그녀가 정말로 말을 할 줄 안다는 것, 처음에 나는 그녀가 지나치게 깍듯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그녀는 단지 언어를 집행하고 있을 뿐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한 단어씩 나아갔다. 모든 글자에 경계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입술이 도톰한 큰 입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입은 어두운 집을 돌아다니며 불을 켤 수 있는 지점들을 점점이 또는 줄줄이 완벽하게 짚어 내는 사람처럼 자신의 문장들 속을 휩쓸고 다녔다. 어떤 엄격함을 갖춘 관능(28)"


  아내인 릴리아를 사랑의 대상으로 마음에 들이는 장면이다. 하얀 피부도, 아름다운 몸매도, 빛나는 생기도 아닌 언어를 하는 방식에 반한다는 설정이 참신하고도 낯설다. 왜? 라는 의문에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읽었다. 작가의 단순한 창작의 허영으로 생각하기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어떤 엄격함을 감춘 관능”. 사실 이 장면의 이면에는 여러 상징이 녹아 있다. 헨리가 내면화한 미국이라는 나라는 닿을 수 없는 권능을 지닌 욕망의 대상이다. 헨리는 자신이 구사하는 영어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다. 원어민과 같이 완벽히 언어를 구사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는 단서가 500여 페이지 곳곳에 펼쳐져 있다. 영어의 완벽한 구사를 완전한 미국인 이라는 정체성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반면 릴리아는 어떤가? 헨리가 한마디 한마디 신경써서 내뱉는 영어를 단지 본능적으로 ‘집행’하고 있을 뿐 아닌가? 그렇다. 릴리아는 미국의 정통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미국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헨리가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릴리아에게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개일 것이다.


“나는 상냥한 사람이다. 나는 매혹적이지는 않다 해도 매우 잘생겨 보일 수는 있는 사람이며, 내가 이 삶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대체로, 당신이 나와 함께 있을 때 왠지 당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 주는 내 재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는 나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중략… 나는 눈앞에 있는 재료로, 당신에게서, 당신이라는 천연 원광에서 다듬어 낼 수 있는 것으로 버틴다.(23)”


“…그냥 배경에만 있으란 말이야. 두드러지지 말고 납작하게 엎드려 있어. 상대가 자네 목소리를 듣고 신뢰감을 가질 만큼은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마. 그러면 아무도 자네가 누구인지 두 번 생각하지 않을 거야(78; 보스 호글랜드)"


상기의 두 인용문은 헨리의 ‘주변부적’ 특성을 나타낸다. 그는 주류인 “당신이라는 천연 원광”을 다듬어 내는 비주류의 일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호글랜드가 말하듯 “배경”에만 있는 존재, “두드러지지 않고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존재”, 추한 모습으로도, 잘난 모습으로도 기억되지 않는 특징 없는 존재, 사람들이 두 번 생각하지 않는 존재가 헨리의 참 모습이다. 스파이에 대한 개념을 나열해 놓은 말이긴 하지만, ‘존재감 없음’이 헨리의 자아상임을 미루어 볼 때, ‘스파이’라는 이 직업이야 말로 헨리 자체를 상징하는 말일 것이다.


“아버지가 보기에 세상— 바로 이 땅, 아버지가 선택한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은 이미 결정된 일군의 절차들, 어떤 교전 규칙들에 따라 움직였다. 이것들이 이민자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였다. 나는 그것을 상속할 운명이었는데, 그 유산은 내 앞에서 이런 식으로 펼쳐졌다. 너는 동트기 전부터 한밤중까지 일한다. 당신은 장사에서 결코 불친절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관대하지도 않았다. 가족의 얼굴은 좀처럼 볼 수 없지만, 가족은 당신의 인생이었다… (82-83)“


“내가 애들과 농구 시합을 할 때면 그는 손에 신문을 둘둘 말아 들고 느지막이 들어와 사람들 눈에 안 띄게 관중석 한구석에 서서 시합을 보며 초조한 듯 신문으로 허벅지를 두드렸다. 내가 슛을 하는 것을 보려고 고개를 빼기는 했지만, 한 번도 다른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응원을 한 적은 없었다(89)"

 

주인공의 부친에 대한 냉소적인 의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이외에도 부친과의 일화들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부자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단서들은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하지만, 좀더 시야를 넓혀 표층 아래를 들여다 보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헨리의 심리가 엿 보인다. 존 강의 몰락을 계기로, 이민족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적대감과 결별하는 것을 보면, 헨리에게 있어 부친이라는 존재는 자신을 ‘소수화’, ‘타자화’, ‘주변화’ 시키는, 거부하고 싶은 한 요소이지만,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상생할 수 밖에 없는 이율배반적인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인 것이다.




이민족자들의 유토피아 혼종적 공간의 좌절


여기, ‘혼종적’공간은 중심화와 주변화의 이항대립적 관계에 대해 탈영토화 재영토화된 가치 중립적 공간이다. 들뢰즈의 ‘순수차이’의 공간이다. 작가는 이러한 혼종적 공간을 두 가지 형상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어쨌든 미트, 깨끗하고 똑똑한 우리 아이 – 어떻게 된 일인지 기적적으로 우리의 것이 된 아이(157)”


“미트는 노인을 사랑했다. 그를 숭배했다. 미트는 노인을 볼 때마다 그 아버지다운 등의 넓은 활부분으로 기어 올라가거나,… 중략… 둘 사이에는 약간 일치하는 데가 있었다. 옆모습을 보면 똑같은 뒷덜미를 따라 뭉툭한 선을 볼 수 있었고, 높고 납작한 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거의 없었다. 릴리아가 미트에게 다른 것들, 강력하게 뻗어 나가는 팔다리, 그 둥글고 빈틈없는 눈, 위로 들어 올려진 조상 전래의 코를 부여하여, 미트라는 아이의 몸은 이미 매우 아름답게 뒤죽박죽이 되고, 전복적이 되고, 역사적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생긴 사람은 미트 이전에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61)”


헨리의 아들 미트에 대한 생각이다. 나르시스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듯이 미트에 대한 찬사가 자못 숭고하다. 단편적으로 제시된 문장들 외에도 헨리의 입을 통해 그려지는 미트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아시안의 외모에 덧입혀진 미국적 외모… 교배를 통해 얻어진 구조적 혼종성의 상징이다. 게다가 그의 몸은 뒤죽박죽, 전복적, 기념비적이 된다. 재영토화의 과정을 생생히 드러내 주는 표현들이다. 게다가 헨리는 미트 이전에는 그렇게 생긴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당연하다. 순수차이를 인정하는 혼종적 공간은 역사적으로 그 이전에는 없었던 까닭이다. 미트는 헨리의 이상향을 가시적으로 드러낸 유토피아의 형상인 셈이다.


“물줄기를 이루어 일을 하고 거래를 하는 이 사람들, 한국인, 인도인, 베트남인, 아이티인, 콜롬비아인, 나이지리아인으로 이루어진 이 다양한 소대들. 이 갈색과 노란색과 무슨색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들어 보지도 못한,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들… 중략… 존 강의 사람들(133)”


“나는 사람들에게 현금은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것은 사절입니다… 중략… 어떤 사람들은 250달러나 500달러씩 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10달러라는 적은 금액을 내기도 한다. 대부분은 50달러를 낸다. 우리는 얼마든 모두 환영한다… 중략… 하지만 누구도, 아무리 돈을 많이 내도, 다른 사람보다 나은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오직 당신이 낼 수 있는 것을 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당신은 명예심과 불굴의 정신으로 낸다. 당신은 의리를 지킨다. 진실하다. 이것이 그의 집의 단순한 규칙들이다(411)”


상기의 두 인용문은 존 강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계의 이야기이다. 이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은 물론, 타 아시아인, 서인도 제도인, 다양한 아프리카인 등의 불법체류자도 있다. 기술하듯, 존 강이 ‘family’로 칭하는 이 사람들은 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같은 대접을 받는다.  존 강이 조직한 이 계의 세계는 다양한 소수인종들이 순수 차이를 인정받는 공간이다. 여기서 작가의 사상적 가치인, 초국가주의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데. 이 공간에서는 지배하는 백인 문화와 희생당하는 소수 인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선이 없다


 하지만 혼종적 공간을 상징하는 두 형상, 미트의 존재와 존 강의 계는 작품 속에서 신기루처럼 스러진다. 백인 아이들에게 깔려 압사당한 아들 미트, 헨리가 보스에게 넘겨준 구성원의 명단으로 인해 붕괴되는 존 강의 계, 작가가 보여주는 유토피아는 비젼만을 제시한 채 바스러진다. 어쩌면 가치 중립을 표방하는 초국가의 실현은 현 인류가 영위하기에 때 이른 이상향이 아닌지 모르겠다.






릴리아는 언어치료사다. 이 치료사는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언어를 웃음거리로 삼는 창백한 백인 여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엉터리로 말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510)” 릴리아가 작품 전체에서 너무나 미국인다운 미국인으로 그 모습과 행동이 그려지긴 하지만 그녀는 소수인종에 대해 편견이 없는 열린 마음의 소지자로, 초국가라는 이상향에 조금이나마 다가가 있다. 헨리가 미국에 동화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자신의 영어구사 능력의 한계로 표출하듯 릴리아의 언어치료사라는 직업은 헨리가 분리된 정체성으로 헤매지 않도록 길을 인도해 주는 치유사의 상징이다. 정체성을 찾은 헨리는 릴리아와 더불어 초국가를 향하는 걸음을 내딛는다.





‘서양의 응시’라는 말이 있다. 식민시대의 뿌리 깊은 잔재로 세상의 주변부에 속하는 아프리카계 서양인, 동양인, 소수민족의 정신적 예속화를 칭한다. ‘서양의 응시’를 내면화한 이들은 삶에서 비주류일 수 밖에 없다. 스스로를 열등감과 소외의 사슬에 속박한다. 본 작품의 주인공인 헨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타인을 다듬어주는 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바로 이 ‘서양의 응시’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길들인 자화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함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는, 세계화가 표방하는 세계주의를 외관상으로만 그럴 듯 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동류의 이권을 둘러 싼 결정체, 부족주의를 벗어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향한 길을 내는  패스메이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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