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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Apr 10. 2021

아무튼, 틴더

틴더를 글감으로 글을 씁니다.

틴더로 사람을 만났던 에피소드들, 이른바 '나의 망한 연애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딱 일 년 전이었다. 글쓰기 실력이 전무하고 기획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생각을 하나씩 글로 옮기는 것은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게으름도 한몫했지만)


그러는 동안 이미 틴더와 관련된 소설이 독립 출판계에 나왔고 아는 사람들은 다 알 정도로 히트를 쳤다. (헬로, 스트레인저-서아-웜 그레이 블루) 틴더라는 플랫폼을 매개로 '관계의 생로병사'를 글로 쓴 그 소설을 지난겨울에 처음 접했을 때 "아, 나는 한발 늦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더랬다. (나도 이거 쓰려고 했는데!!)


글솜씨 역시 무척 뛰어나서 흡입력이 있는 그 틴더 소설을 읽으며 나는 '한 발'만 늦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늦은 것뿐만 아니라 나의 글은 왠지 방향도 크게 엇나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가 쓰려던 것보다 그 소설의 이야기가 훨씬 더 틴더다웠다.


한국에서 틴더가 아무리 동네 친구를 사귀는 어플이라고 광고를 해봐도 그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틴더? 그거 원나잇 어플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쓴 틴더 에세이에 그 흔한 원나잇 에피소드 하나 안 나오는 것은 큰 결함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틴더에서 일어나는 몹시 다양한 형태의 남녀관계를 글로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남녀관계를 깨부수어버리는 사람들에 의해 상처를 받고 눈물 콧물을 쏟는 입장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내 글을 보며 사이다인 줄 알고 마셨는데 맹물이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자극적인 이름만큼 내용까지 자극적이려면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발행하는 것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맞서는 일이었다. 글 속에서 '솔직하고 유쾌한 30대 싱글'이라는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용기를 냈다. 솔직해야 하기 때문에 (굳이?) '틴더를 합니다'라고 고백한 후에 상대방의 상상이 걱정되어 부연설명이 길어지는 경험을 수없이도 했으니 말이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로 시작하는 구차한 변명들은 내가 생각해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이제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쓴 내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잠시 동안 혹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떠났다. 다른 어떤 표면적인 만남들보다 연애를 전제로 만나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 물론 '연애와 사랑'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서 한참 빗나갔던 경험들이지만, 어쨌든 훨씬 더 좋다. 자아실현이 인간의 욕구 중에 최고봉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틴더는 나의 성장동력이었고 나의 틴더 에세이는 나의 성장기인 것이다.  


언제나 경험을 통해 배웠다 말하며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이제야 많이 배웠다는 것이 이전의 내 무지를 입증하는 것만 같아서. 하지만 솔직하고 유쾌한 30 싱글로서 부끄러움은 넣어두기로 한다.


내 글을 통해 '사랑할 누군가를 찾는 사람들'이 공감과 재미 그리고 위안을 얻기를, 그리고 더 욕심을 내보자면, 그들의 세계 역시 조금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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