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디 말문이 트인 건 22개월. 그런데 31개월이 된 로디는 여전히 다양한 외계어를 구사한다.
(설거지하는 내 등 뒤에서) “엄마! 로디 방금띠그륵띠그륵했어!”
“오, 그랬어? 어떻게 했어?”
“(손짓으로 무언가 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했어!”
“오, 진짜? 재밌었겠다!”
저녁에 로디를 거실에 혼자 두고 씻어야 할 때가 많다. 문으로 단절되면 로디도 나도 많이 불안하기에 (성별은 다르지만) 아직은 괜찮은 듯하여 욕실 문은 열어두고 안전문만 닫은 채 씻는다. 그런데 3분쯤 지나면 거실에 있던 로디가 “엄마, 엄마!” 소리를 지르면서 우다다다 달려온다. 그러면 안전문에 매달려서 종알종알 이야기를 한다.
아는 단어들을 총동원하여 스토리를 만든다. 꽤 그럴듯한 이야기도 많아서 선생님께 물어볼 때도 있다.
“선생님, 로디가 어제 세영이 물었나요...?”
“아뇨...? 로디가 그러던가요?”
대부분 로디의 말은 사실과 달랐지만 김영하 작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의 거짓말을 무조건 혼내지 말라고. 그들은 창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로디가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오물거리는 입으로 던지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재미있다. 듣는 이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매우 흥분된 표정과 목소리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로디를 보고 있으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5살 때까지의 기억이 거의 없다. 지극히 단편적인 기억만 조각처럼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도 꽤 또렷한 장면이 하나 있다. 엄마가 검은 색 전기 테이프로 부업을 하느라 바쁘셨는데 로디만한 내가 무언가를 가리키며 “엄마! 이거 따이따이지아또야!”라고 말하면 엄마가 다정하게 “응, 그랬어?”라고 대답해주는 장면. 놀이에 가까운 이 대화는 두세 번 더 이어진다. 그때마다 엄마는 “응, 응. 맞아.”라고 대답해준다. 그 때 나는 속으로 ''따이따이지아또'가 진짜 있는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나도 내가 헛소리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외계어를 내뱉었고 엄마는 그때마다 내가 원하는 따듯한 눈길을 건네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로디만큼 어렸던 나는 재미난 발음을 가지고 엄마의 다정한 눈길과 목소리를 구했던 것 같다. 특별히 할 말도, 엄마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도 없었지만, 그래서 이상한 단어들과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지만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엄마와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이다.
아마 로디도 그렇겠지.
엄마의 사랑 가득한 시선을 구하기 위해 머릿속, 입 속에서 말도 안 되는 단어들을 만들고 던지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