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만나기까지(아홉 번째 이야기)
병실에서의 날은 곧 밝았다. 병원의 하루는 비교적 일찍 시작된다. 7시 반이면 아침 식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5시가 되어서야 입원을 했던지라 잠깐의 감상에 젖었던 나도 곧 그들과 함께 아침을 맞았다. 나는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금식'이라고 했다. 어제부터 꼬박 굶었는데, 통증이 어느 정도 줄어들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오전 9시 무렵이면 의사들이 회진을 돌기 시작한다. 내가 입원한 산부인과 병동은 대부분 여성암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참 애매한 환자였다.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환자도 아니었고, 다른 병원에서 잘못되어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한 환자다 보니 그들 입장에서도 여러 면에서 달갑지는 않은 환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모든 의료진들이 나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보통은 한 병실 안에서도 배드 별로 주치의가 다르다. 따라서 회진도 담당 주치의 별로 나누어서 그 밑에 수련의들만 따라 들어와서 환자 상태를 체크하게 되어 있는데, 어쩐 일인지 그 날 아침 회진에 산부인과 과장이 함께 들어왔다. 과장부터 시작해서 명목상 주치의, 그리고 응급실에서 나를 입원시켜주었던 당직의를 비롯한 여러 명의 수련의들이 있었다. 어림 잡아 7~8명쯤은 되었을 것이다. 과장이라는 사람은 엄마 같이 푸근한 인상을 가진, 연륜이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때도 계속 앉아 있었다. 과장은 내게 왜 누워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나는 '누우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누우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면서 동시에 예고도 없이 침대를 눕히기 시작했다. 눕는 순간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는 나는 그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고 눕자마자 곧바로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소리는 질렀지만 다행히 그 전 날 구급차에서처럼 욕은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정신은 차린 상태였으니까. 대신 병실 밖 복도에서 지나가던 사람들과 옆 병실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우리 병실을 기웃거렸다.
과장은 나의 반응을 보고 너무 놀랐는지 급히 침대를 다시 세웠다. 그러고는 주치의를 비롯한 여러 명과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나에게 말했다.
"아마도 복강 내에 피가 많이 차서 '간' 있는 부위까지 닿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앉으면 피가 밑으로 내려가니 괜찮다가 누우면 피가 '간'을 건드려서 통증이 있는 것 같네요."
복강 내 피는 자궁에서부터 이미 간까지 차 올라 있었던 것이다.
오늘 피검사를 통해 혈액 수치를 계속 확인하고(출혈이 계속될 경우수혈을 받아야 한다), 초음파로 늘어나는 피의 양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내일까지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나팔관을 뒤집어서 지지는(지혈하는) 시술을 해야 한다고 내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아직 출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그 시술은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임신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중으로 출혈이 저절로 멈추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으므로 금식은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출혈이 더 심해질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다. 배가 점점 더 고파왔다.
그렇게 나는 한 번 누워보지도, 아무것도 먹지도 못 한 채 계속 앉아서 창 밖만 바라보았다. 아침이 되어 남편이 친정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급하게 달려와 침대의 커튼을 걷어젖힌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엄마는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달려오는 동안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엄마가 푹 고꾸라지듯이 주저앉았다. 나는 '괜찮다'라고 '괜찮다'라고 엄마를 달랬다. 엄마는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복수를 빼주는데 도움을 주는 '알부민'과, 계속되는 금식으로 인해 탈수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수액, 그리고 혈액 까지(결국 수혈을 받아야 했다)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대개 시험관을 시작하게 되면 과배란 중에 호르몬의 영향으로 살이 많이 찐다고 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시험관 하느라 피부도 안 좋아지고, 체중만 늘었다는 한탄을 많이 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인지 시험관을 시작하면 오히려 살이 빠졌다. 한 번 시술을 받을 때마다 보통 2~3kg 정도의 체중이 감소했다. 이번에도 체중은 감소했고, 이틀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 한 채 병실에 앉아 있는 내 꼴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날 몇 번의 초음파 검사를 더 받았다. 출혈은 멈추지 않았고 복강 내 고인 피의 양도 점점 더 늘어났다. 나의 금식도 계속되었다. 혈액과 철분제가 계속 투여되었다. 그 와중에도 계속 배는 고팠다.
그 날 저녁 다소 늦은 시간에 간호사가 찾아와 과장님이 잠시 보자신다며 나를 수술방으로 데려갔다. 산모가 아이를 출산할 때 쓰이는 방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생긴 곳이구나. 다들 이런 곳에서 아이를 낳는구나. 나도 이런 모습이 아니라 아이를 낳으러 오고 싶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수술방에는 처음 응급실에서 나를 진료했던 그 전공의가 먼저 와 있었고, 잠시 후 과장이 들어왔다. 퇴근을 했다가 집에 가 있는데, 오늘 아침 회진 때 눕지도 못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눕히자마자 고통 속에 질러대던 비명 소리가 귓 가에 맴돌아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집에 가자마자 주치의에게 어디냐고 전화를 했더니 이미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다고 하길래 그나마 병원에서 집이 더 가까운 자기가 직접 왔다고 했다. 환자복 아래로 노출되어 있는 나의 두 다리를 보더니 왜 이렇게 멍 자국이 많으냐고 물었다. 나는 원래 멍이 잘 드는 사람이다. 어디서 언제 멍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내 다리는 항상 어딘가에 몇 개씩쯤 멍이 들어 있었다. 원래 그렇다고 했더니, 빈혈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고, 빈혈이 있으면 임신이 잘 안 된다고, 관리를 잘하라고 말해 주었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모두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과장이 초음파를 직접 보기 시작했다. 지혈을 위한 수술을 하게 되면 임신이 더 어려울 수 있어서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모니터를 보며 옆에 있던 당직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나누더니 드디어 나를 향해 말했다.
"출혈이 멈춘 거 같아요. 아까 전에 쟀을 때랑 고인 피의 양이 더 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대로 두면 감염의 위험도 있고, 일단 환자분이 눕지를 못 하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이 피를 좀 빼줄게요. 그러면 훨씬 편해질 거예요."
"아픈가요?"
"딱 한 번 아플 거예요. 눈 한 번 딱 감으면 되니까 조금만 참아요."
긴장감에 손에 땀이 쥐어졌다.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딱 한 번 엄청난 통증이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일제히 곤두서는 듯한 무서운 통증이었다. 딱 한 번, 약 2초 정도였다. 질을 통해 호스를 꽂고 그 호스를 통해 복강 내에 가득 찬 피가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과장은 모든 과정을 내게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가느다란 호스로 뽑아내는 것이라서 시간이 꽤 걸렸다. 마지막에는 일종의 삼투압 현상 때문에 피가 더 이상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아 힘을 주어 주사기로 빼내야 했다. 그때 당직의가 엄청난 팔의 힘으로 그것들을 뽑아내야 했는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꽤 많은 힘을 써야 했던 모양이다. 과장이 힘을 쓰고 있는 전공의에게 엄청난 칭찬 세례와 응원을 해 주고 있었다.
과장의 말 대로 처음에 딱 한 번만 아프고 피가 빠져나오는 동안은 별 다른 통증이 없었는데, 아니, 오히려 고여있던 피가 빠지니 배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 하복부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신음 소리를 내자 과장이 '이제 그만하자'라고 전공의에게 지시했다.
"다 뽑아내지는 못 했어요. 더 하면 아플 거 같아서 여기까지만 할게요. 장기 사이사이에 고여 있는 피들은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흡수가 될 거예요."
그리고 나는 보았다. 병 하나에 가득 차 있는 내 피를. 모두 500cc라고 했다.
과장은 이제 한 번 누워보겠느냐고 했다. 겁이 났지만 해 보겠다고 했다. 천천히 침대가 뒤로 눕혀졌고, 잔뜩 긴장해서 힘을 주었던 몸에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내가 괜찮다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더니 과장이 말했다.
오늘 밤은 편안히 누워서 자라고.
그 병원은 난임 진료를 보지 않기 때문에 퇴원 후 더 이상 그 과장을 만날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분이 얼마나 내게 고마운 사람이었는지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떠올려보니, 당시의 내 마음을 미처 전달할 기회가 없었음이 아쉽게 느껴진다. 내게는 생명의 은인 같은 사람이었다. 나를 바라보던 따뜻한 시선, 내가 눈에 밟혀 퇴근한 후에도 가만히 쉴 수가 없어 다시 나를 만나러 병원으로 돌아온 그 마음, 모든 것이 환자를 향한 그의 진심이었다. 아이들을 만나기까지 그 모든 시간들은 물론 험난하고 힘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고마운 사람들, 좋은 사람들의 응원과 배려가 늘 함께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그런 감사함을 제대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복강 내에 고인 피를 모두 빼내고(일부는 남아 있었지만) 모든 통증이 사라진 그날 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남편 대신 친정 엄마가 내 옆을 지켰다. 모두가 잠든 병실, 고요함과 편안함이 한꺼번에 찾아오며 나는 문득,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험난한 과정을 거쳐 어찌 됐든 지금 이렇게 편안한 상태로 더 이상의 통증 없이 안전한 병실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그날 밤 나는 난임 과정을 거쳐온 그 몇 년 간 처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용히 기도를 했다. 그리고 과장의 배려 덕분에 그날 밤은 정말 오랜만에 편안히 누워서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