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아하지 말걸

아이들을 만나기 까지(열 번째 이야기)

by 옥민혜

난소 출혈 문제가 해결되고 나자 이제는 그렇게 고생해서 채취한 내 난자가 3일 동안 얼마나 잘 배양되었는지, 과연 이 몸 상태로 이식이 가능한지가 궁금해졌다. 그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시험관 시술 담당의와 몇 번의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시술 중에 있을 수 있는 당연한 합병증이었고, 나는 그저 재수가 없어 0.08%에 해당했을 뿐이니까. 오히려 이런 내가 자신의 환자인 것이, 그래서 자신 역시 며칠 간을 긴장 속에 지내야 했으니 사과는 내가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3일 배아는 난자를 채취한 지 정확히 3일 후에 이식해야 한다. 고여있던 피를 모두 빼내어 더 이상의 통증은 없었지만 낸 몸은 많이 지쳐있었다. 배아 이식은 최상의 컨디션에서 받는 것이 좋은데 당시 내 몸은 이식받기에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해서 채취한 난자를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냉동배아가 나올지 어떨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1차 때 냉동배아를 하나도 얻지 못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신선 배아 이식은 더 간절했다. 출혈이 멈추고 마침내 고여 있던 피를 모두 빼낸 그다음 날이 바로 채취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주치의가 그 날 아침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퇴원을 해도 되는지를 물었고, 우선은 이식을 받아야 하니 원한다면 해도 좋다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 응급으로 실려온 환자일 뿐 채취도 이식도 다른 병원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곳에서 나를 더 이상 붙잡고 있을 명분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곳에서 좀 더 안정을 취하고 싶었으나, 나는 반드시 그날 이식을 받아야만 했다.


그 아침에 주치의 회진이 끝나마자마 바로 퇴원 결정이 내려졌고, 나는 시술했던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이식 예약을 잡았다. 급하게 입원을 했고 입원 기간도 짧았기 때문에 정리할 짐도 많지 않아서 퇴원하는 길에 바로 이식 받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시부모님이 다녀가셨다. 그래도 어른이 오셨으니 애써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나를 보시 마자 시아버지께서는 "웃음이 나오느냐."며 걱정스러운 눈 빛으로 바라보셨다. 죄스러운 기분이었다. 남편은 외아들에 장남이다. 다소 늦은 결혼에다 아이까지 늦어지니 걱정이 많으셨을 텐데 그에 대한 핀잔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우리를 기다려 주셨었다. 그런 며느리가 시험관이니 뭐니 무리해서 뭘 시도한다고 하실 때부터 몸 상할까 걱정부터 하셨었다. 그런데 이런 꼴로 병원에서 그분들을 뵈어야 하는 나도, 그런 나를 바라보시는 두 분도, 서로가 안타까워 말을 잇지 못했다.


이식할 병원 대기실에 잠시 앉아 있는데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몸은 좀 어떤지 안부를 물으려 전화를 하신 것이었데 퇴원을 하고 다시 이식을 하기 위해 그 병원에 있다고 하자 어머님께서는 "그 몸으로 또 뭘 하냐"며 나무라셨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신지라 시험관 과정도, 그로 인한 부작용도 그 내용을 자세히 알기는 어려우셨을 것이다. 아마 내가 병원에 왜 입원했었는지, 왜 3일밖에 안 됐는데 또 무얼 하러 '거기'에 가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으셨을 것이다. 시부모님의 걱정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식을 받으러 들어갔다. 그 날 나는 3일 배양 배아 2개를 이식받았다. 그리고 담당의는 대학병원 입원비용만큼을 시술비에서 감액해 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 동안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몸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런 상태로는 사실 이식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다른 방도가 없었다. 거의 누워 지내다시피 그렇게 또다시 길고 긴 '기다림'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피검사 결과 이틀 전, 아침에 질정을 넣는데 피가 묻어 나왔다. 생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울면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모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간절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너무 힘들게 얻어 낸 난자였기 때문에, 너무 힘들게 이식한 배아였기에 그 고생에 대한 보답에서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길 더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데 피검사도 하기 전에 또다시 시작된 생리에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전화를 걸자 간호사는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늘 그렇듯 피검사를 해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어쨌든 생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싸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행 중 다행으로 5일 배양 '냉동배아'가 3개가 나왔다고 했다. 비록 이 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번에는 과배란과 채취 과정 없이 바로 이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피검사 결과는 당연히 '꽝'이었고, 나는 다음번 냉동 배아 이식을 기다려야했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병원이 있다고 한다. 한 병원 내에서도 의사가 여러 명일 경우 자신에게 맞는 의사가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A병원에서 몇 년을 시도해도 안 되었다가 B병원으로 옮기자마자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C병원을 다니다가 계속 실패해서 A병원으로 옮겼더니 곧바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만약 한 병 원에서 계속 실패를 한다면 적절한 시기에 병원을 옮겨보는 것도 좋다. 누군가는 A 의사가 너무나 좋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A 의사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난임 여성들은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저마다 조금씩 예민해져 있다.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의 낙관주의자라 하더라도 마냥 씩씩하고 즐겁게 그 과정을 거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조금씩은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별생각 없이 한 의사의 말 한마디에 크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걱정해서 해 준 지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해 두 번 다시 그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점점 사람을 만나기가 싫어지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세상에서 나만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한 없이 외로워진다. 유일한 친구는 결국 남편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난임 여성들에게 남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남편의 협조와 배려, 진심, 사랑, 그런 것들이 너무나 절실하다.


그다음 회차에 나는 바로 냉동 배아 이식에 들어갔다. 과배란과 채취의 과정이 없으니 이식 당시의 몸 상태도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이렇게 좋은 컨디션에 이식을 받을 수 있다니, 무언가 결과도 좋을 것만 같았다. 냉동배아는 3개, 나는 이번에 1개만 이식하고 2개는 남겨두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쌍둥이'는 원치 않았었다. 매 번 2개의 배아를 이식한 건 의사의 판단이었지 내 의사가 반영된 적은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이식은 대개 2~3개를 한다.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중에 어떤 배아가 착상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4개 이상을 하지는 않는다. 만에 하나 4개 이상의 배아가 모두 착상돼 버리면 산모도 태아도 위험해진다.


피검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지루하지만, 늘 피검사 전에 생리가 시작되었던 경험 때문에 2~3일 전부터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검사 당일까지 피가 비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기대가 일기 시작했다. 임신테스트기는 사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가 피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결과를 기다렸다. 몇 시간 후 전화가 걸려왔다.


"민혜 님, 임신 수치 85로 임신이세요. 축하드려요."


마구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남편에게 먼저 알렸는지, 친정엄마에게 먼저 알렸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도 엄마도 나 만큼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남편은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인공수정 당시 불량 임신테스트기에 속고 나서 너무 마음이 상했던 경험을 하고 나니, 미리부터 너무 좋아하는 것으로 혹시 부정을 타는 것이 아닌가 싶어 다음에는 절대 처음부터 너무 좋아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었다는 것이다.



그래, 정말이지 너무 좋아하지 말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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