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만나기까지(열두 번째 이야기)
그렇게 차에서 실컷 울고 나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집에는 친정 엄마가 와 계셨다. 나 대신 말끔하게 집 청소를 하고 빨래를 폭폭 삶고 계셨다. 집 안으로 거실 창을 통해 봄 볕이 드리우고, 빨래가 폭폭 삶아지는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흐르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시며 나를 기다리셨을 것이다. 아무 일 없기를, 무사하기를, 내가 웃는 얼굴로 들어서며 엄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를.
차마 어떻게 되었는지를 먼저 묻지 못하시고 내 눈치만 살피는 엄마에게 나는 방금 유산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왔다고, 수술 날짜도 잡고 왔다고, 그런 일들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무슨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누워 버렸다. 방 밖에서 머뭇거리던 엄마가 '괜찮으냐'라고 물으셨다. '지금 이게 괜찮은 것 같아 보이느냐'라고 신경질을 냈다. 침묵이 흘렀다. 엄마는 그렇게 나를 말없이 바라보시다가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챙겨 돌아가셨다. 울고 계셨다.
엄마가 나가시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나도 소리 내어 울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엄마에게 그렇게 밖에 하지 못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미움, 그리고 미안함, 내내 즐겁고 설렜던 지난 얼마 동안의 기억들. 내 울음소리만 가득하던 집 안에 울음이 그치고 나면 그저 어두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수술 전 날 남편 회사 앞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둘 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적인 대화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 휴가를 낸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수술대 위에 누울 때 까지도 울지 않았다. 그다지 두렵지도 않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매우 의젓하고 덤덤하게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나니 회복실에 있었고 양 쪽 팔에 무려 8개의 바늘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수술 전에 미리 잡아둔 혈관이 약이 들어가면서 터져버렸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나는 혈관이 많이 약해서 혈관 잡기가 참 쉽지 않은 환자다. 그렇게 터져버린 혈관을 다시 잡으려고 무려 8군데나 찔러댔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밴드가 붙어있고 양 쪽 팔이 온통 멍투성이었다.
유산도 출산한 것과 마찬가지라 몸조리를 잘해야 한다고들 한다. 집에 돌아오니 친정엄마는 미역국을 끓이고 계셨고 나는 한 동안 그 미역국을 먹으며 지냈다. 소파수술 후에 통증은 2주가 넘게 지속되었다. 소파 수술 후의 통증 역시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지독한 생리통 같은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고, 난소 출혈 이후 통증이라는 것에 노이로제가 걸린 나는 수술 후에 이렇게 아픈 것이 정상인지를 묻기 위해 몇 번이나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몸보다 더 아픈 것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며 내다본 창 밖으로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꽃을 구경하러 집 밖으로 나갔다. 완연한 봄 날이었다. 봄바람에 벚 꽃이 눈처럼 나리고 있었다. 그 길 아래를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나의 아기를 생각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많이 사랑했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꽃 길을 걸으며 뒤늦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두 개의 냉동 배아가 남아 있었기에 아직 한 번 더 기회는 있었다. 통증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다음 달에 바로 이식을 할 수는 없었다.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머지 배아 2개를 이식하면서 이 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이제는 다 그만두자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아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아마도 '마음을 비우라, 마음을 내려놓아라'라는 말일 것이다. 마음을 편안히 먹고 다 내려놓고 있으면 그때 아기가 찾아온다는 얘기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하는 그 말이 난임 여성들에게는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게, '자, 이제부터 마음 한 번 비워볼까?'라고 해서 비워지는 게 아니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아기가 찾아올 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과는 관계가 없는 일인 것이다.
마지막 남은 냉동 배아 2개를 마저 이식하고 늘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피검사 이틀 전에 생리가 시작되었다.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그 날은 주말 저녁이었다. 남편이 내게 닭볶음탕을 해 주겠다고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급 레시피를 들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닭볶음탕을 해 주겠다며 재료를 준비하는 남편에게 생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남편은 위로 대신 요리를 했고,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멀리서 아카시아 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왔다. 온 동네가 아카시아 꽃 향기로 가득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편의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닭볶음탕은 실패작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먹을 만하다고 했지만 남편은 매우 속상해했다. '맛있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라고 말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마지막 냉동 배아 이식에 실패한 것도, 닭볶음탕이 실패한 것도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보다 남편이 더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