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만나기까지(열 네번째 이야기)
임신에 성공한 것은 기뻤지만 쌍둥이 임신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보다 결혼도, 출산도 다소 늦은 편이다 보니 나는 이미 육아의 고충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를 키우는 일에 환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쌍둥이 육아는 더더욱 그랬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예쁘고 귀여운 쌍둥이들이 많이 알려져서 쌍둥이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심지어 내 지인 중 하나는 난임도 아니었는데 일부러 쌍둥이를 낳고 싶어 시험관을 했고, 실제로 쌍둥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 그 아이들이 100일쯤 지났을 무렵 '이렇게 힘들 줄 모르고 낳았다.'라고 하소연하길래 너무 화가 나서 연락을 끊어버린 적도 있다. 육아에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 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내게로 오는 일'이다.
그 인생은 내 것도, 부모의 것도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낳고 성숙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세상 그 무엇보다 위대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쌍둥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 만한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2주 후, 나는 초음파를 통해 두 개의 힘찬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 몸에서 무려 세 개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었다. 몸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변화와 임신의 증상들은 좀 불편한 것이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격하게 뛰어댔고, 숨도 차고, 열이 확확 올랐다. 그러나 그 당시에 본격적인 불편함이란 아직 시작도되지 않은 것이었다. 이른바, '입덧 지옥'이라는 것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입덧은 5주 후반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약간 매쓰껍고 울렁거리는 정도로, '이것이 입덧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만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입덧은 6주부터 시작됐다.
임신을 하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입덧을 하게 되어 있다. 비교적 가벼운 입덧이라면 '약간 입맛이 없는 정도'라고 한다. 이는 정말 가벼운 입덧이라고 할 수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산부인과 의사도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심한 입덧을 했다. 병원에 20년 간 근무했다는 수간호사와 담당의가 그랬다. 이렇게 까지 심한 입덧은 처음 보았다고. 우선 나는 물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었으며,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만 돌려도 구토를 했다. 거실에 앉아있다가 구토가 나오는 순간 화장실까지 달려갈 새가 없어서 비닐봉지를 옆에 쌓아두고 앉은 채로 토했다. 목이 너무 말라서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지만 보리차도, 생수도, 루이보스차(임산부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도, 이온음료도 그 어떤 것도 마실 수가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먹은 것보다 훨씬 많은 무언가를 토해버렸다.
음식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도 민감했다.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었다. 핸드폰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작은 소음에도 구토를 했다. 양치질을 일주일에 한 번씩 했다. 샤워는 열흘에 한 번씩, 그것도 목욕 의자에 앉은 채로 친정 엄마가 씻겨 주어야 했다. 목욕을 하고 있는 도중에도 계속 구토를 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냄새'였는데, 그중에서도 '밥 짓는 냄새'가 가장 역했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은 밥을 먹어야 했기에 밥 냄새를 맡을 수가 없는 나 때문에 남편은 밥솥을 베란다에 들고나가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밥을 해 먹었다. 하루 종일 구토를 하다가 지쳐서 잠이 들면 그다음부터는 속이 타들어 가는 듯한 속 쓰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아침이 되면 남편은 조용히 일어나 주방에서 최대한 냄새가 나지 않을 과일이나 빵 종류를 간단히 챙겨 먹고 출근을 했다. 그러고 나면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남편이 퇴근해 올 때까지 그 자세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은 토할 때뿐이었다. 아무것도 먹은 것 없이 빈 속으로 토하기만 하면 나중에는 노란 위액만 나온다. 그러다가 피 까지 섞여 나오기 시작한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했다. 제일 처음 입원을 한 것은 7주 때였다. 입원을 하면 탈수 증세를 완화하고 위의 운동을 억제시켜주는 수액을 맞게 된다. 수액으로 심한 탈수 증상은 막을 수 있지만 수액을 맞는다고 해서 입덧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병원 생활은 모든 것이 불편하다. 한 번 잡은 혈관은 3일 정도가 되면 다른 혈관으로 옮겨줘야 하는데 혈관 잡기가 쉽지 않은 나의 경우에는 수액을 맞는 것조차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수액 놓을 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수간호사에 간호부장 까지 불러오는 소동까지 치러야 했다. 특히 소음에도 구역감을 느끼는 나에게 병원 내에서의 이런저런 소음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이 될지 모르는 기간을 1인실에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입원을 했다가 너무 집에 가고 싶으면 퇴원을 했고, 의사는 '어차피 가더라도 내일 되면 다시 올 텐데.'라며 말렸다. 병원에서 집에 가는 그 짧은 길에도 계속 구토를 했다. 결국 의사 말대로 집으로 돌아가 간신히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울면서 다시 입원을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토하기만 하는 생활이 지속되자 내 체중은 한 달 만에 9kg이 빠졌다. 7주부터 12주가 될 때까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더 이상은 입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입원을 해도 10번 토할 것을 7번 토하는 것일 뿐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혼자서 토하다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퇴원 후에는 친정에 머물기로 했다. 그때부터는 결혼 전 내가 지내던 방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보냈다. 목소리를 크게 내면 구토를 해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방에서 누운 채로 갑자기 구토가 시작되면 거실에 있는 친정 엄마를 불러야 했는데 그것조차 할 수가 없어서 친정 아빠가 침대 옆에 차임벨을 달아 주셨다. 벨을 누르면 거실에서 소리가 울리는 장치였다. 벨을 누르면 엄마가 봉지를 들고뛰어 들어왔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누운 채로 토하는 날도 있었다.
어렵게 임신했다고 해서, 간절한 임신이었다고 해서 그 고통을 달게 감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임은 난임이고, 입덧은 입덧이었다. 임신이 되지 않아 힘들었던 시간만큼이나 입덧 역시 고통이었다. 친정에서 얼마 간을 지내고 13주쯤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퇴근한 남편이 방으로 들어와 좀 어떠냐고 묻는데 그 사람을 붙들고 나는 울부짖었다. "나 좀 살려줘." 그 말만 반복했다. 다른 말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을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아무 데도 갈 수도 없이 토하기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생활은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마치 짐승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혹시 악마와 거래를 한 것이 아닐까.
네가 그렇게 원하는 임신을 하게 해 줄 테니, 대신 입덧 지옥을 견뎌야 해. 나와 거래를 하겠나?
임신이 너무나 간절했던 나머지 내가 혹시 그런 거래를 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래 원하는 대로 하자."
그것은 누구도 차마 입 밖으로 내어 말할 수 없었던 최종 통고 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친정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결정은 너희들이 하는 거지만 나중에 후회할 짓은 하지 마라. 나는 자격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다. 그래도 후회할 짓은 하지 마라."
후회할 짓. 내가 살기 위해 아이들을 버리는 것. 벼랑 끝에 서 있던 나의 생각은 마침내 거기에 까지 닿아있었다.
그렇게 한 바탕 울고 나서 나는 짐을 쌌다.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극단적인 생각에 까지 이르고 나니 오히려 용기가 생겨났다.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렇게 결심하고 짐을 싸서 남편과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부모님은 한참을 선 채로 바라보셨다. 다음 날 친정 아빠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왔다.
아빠가 딸한테 전화도 마음대로 못 하네. 지금 너무 힘들겠지만 이것도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다 축복이잖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야. 아무것도 못 해 줘서 안타깝고 미안하다. 조금만 더 견디자. 사랑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아빠에게서 난생처음 받아보는 문자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