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먹고 싶다는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만나기까지(열다섯 번째이야기)

by 옥민혜

집으로 돌아온 후, 정확히 15주가 되는 무렵의 어느 날, 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 날의 분위기도, 상황도 정확하게 기억을 한다. 구체적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간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을뿐더러, 그런 음식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토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 그 메뉴를 떠올리며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당장 함께 있던 친정 엄마에게 얘기를 했고, 엄마는 바로 그것을 만들어 주었다. 음식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지만 견딜 만했다. 그리고 10주 만에 처음으로 밥을 먹게 되었다. 밥을 먹기까지 두 달하고도 2주가 더 걸린 것이다. 물론 많이 먹지는 못 했다. 1/3 공기 정도를 국에 말아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제야 내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의 '소고기 뭇 국'을 잊지 못한다.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입덧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먹으면서 토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 하고 토하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먹으면서 토하는 것은 토하는 과정이 좀 아름답지 못하다. 물론 위액이나 피를 토하는 것 역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먹은 것을 고스란히 토해내는 일은 훨씬 더 볼썽 사나운 일이었다. 그래도 머릿속에 무언가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고 그것을 씹어 삼킬 수 있다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흘러갔다. 침대에 누운 채 벽시계만 바라보던 것보다는 조금 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친정 엄마나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집 앞 산책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고, 양치질도 이전보다 조금 더 자주 할 수 있게 되었다. 샤워는 여전히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본격적인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20주 무렵부터였다. 이제 소음으로 인한 구토는 완전히 없어졌고, 직접 운전을 해서 친구를 만나러 갈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구토는 했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출산 전 날에도 그 날 저녁에 먹은 것을 전부 게워냈었다. 말로만 듣던, 낳기 전 날까지 입덧을 한다는 장본인이 바로 '나'다. 그래도 행복했다. 외출도 할 수 있고, 무언가를 먹을 수도 있게 되면서 조금씩 출산 준비를 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출산 준비를 했던 그때가 임신 이후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나는 아이들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도 구토를 했었다. 그 까맣고 하얀색으로만 이루어진 사진은, '이 아이들 때문에 내가 입덧을 하고 있다'라는 인지 때문인지 거의 반사적으로 구역감을 느끼게 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갈 때마다 손에 쥐어주는 그 초음파 사진을 나는 매 번 아무 데나 던져놓고 한 번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집 안에서 초라하게 굴러다니는 초음파 사진들을 주워 모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뱃속의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입덧이 많이 완화되었음에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양은 여전히 적었다. 작은 아이의 머리가 갈비뼈 사이에서 정확하게 위장을 누르고 있어서 아주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숨이 찼다. 임신 초반에 체중이 12kg이나 빠졌지만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면서 그것은 점차 회복이 되었다. 그런데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되도록 잘 먹어야 했고, 남들 다 먹는 엽산 한 번을 챙겨 먹지 못했기 때문에(엽산은 임산부라면 꼭 챙겨 먹어야 하는 필수 영양제다) 더욱 조바심이 났다.


보통 단태아 임신일 경우 10~11kg 정도가 적정한 체중 증가량이라고 한다. 물론 이 것은 임산부의 상태에 따라 매우 유동적인 수치다. 이에 비해 쌍둥이 임신의 체중 증가는 그 두 배쯤은 되어야 한다. 배 둘레도 마찬가지다. 쌍둥이를 품은 임산부의 배는 초기부터 이미 거대해진다. 중기를 넘어가면 지나가던 사람이 돌아볼 정도로 엄청나게 커진다. 누가 봐도 '저 안에는 둘 이상이 있구나'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내 배는 좀처럼 커지지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임신 전에 입던 옷들을 막 달 까지 그대로 입었다. 그리고 외투를 입고 밖에 나가면 임신을 했다고 말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임산부인 줄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배가 너무 작고, 아이들이 너무 작다는 것은 주수가 늘어갈수록 큰 걱정 거리가 되었다. 뱃속에 두 명의 아기가 들어있는데도 출산 직전까지 내 체중은 겨우 4.5kg 밖에 늘지 않았다. 병원에 진료를 갈 때마다 체중을 재 주는 간호사들로부터 매 번 걱정스러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28주가 되면서 일반 산부인과에서 대학 병원으로 옮겼다. 쌍둥이 출산은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따르고, 나는 쌍둥이에 고령 임신이기도 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내 체중이 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도 좀처럼 자라지를 않았다. 이 때문에 30주부터는 매주 '정밀 초음파'를 실시했다. 한 번에 30만 원이 넘는 초음파를 매주 봐야 했다. 혹시 아이들에게로 가는 혈류에 이상이 있어서 엄마의 영양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라지 못하는 것이라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다행히 혈류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아이들의 체중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라지 않는데 작은 아이가 갈비뼈 사이에 머리를 두고 있는 통에 나는 숨쉬기 조차 점점 힘들어졌다.


32주가 된 어느 날, 친정 엄마와 집 근처에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위경련이 왔다. 위험한 상황임이 감지되었다. 그 길로 택시를 타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그 날은 하필 담당의의 진료가 없는 날이었고, 대신 진료를 봐준 의사는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통증을 참고 있는 나를 보며, 이러다 갑자기 진통이 걸릴 수도 있다며 바로 입원을 하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입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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