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아이들을 만나기까지(열한번째 이야기)

by 옥민혜

피검사 결과 임신 수치 5(또는 10) 이상부터 임신이라고 보기는 하지만 1차 피검사에서 100 이상은 나와야 안정적으로 착상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임신 성공 수기 글들을 보면 5에서부터 시작해 기적적으로 수치가 올라 출산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50이든, 60이든 수치가 다소 낮다고 해서 무조건 안 좋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미리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100은 넘지 않았지만 어쨌든 1차 때의 13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이기는 했다. 간호사는 내게 1주 후에 2차 피검사를 하러 오라고 했다.


보통 1차 피검사 때가 임신 4주 차가 된다. 대개 자연임신의 경우라면 4주 차 때 자신의 임신을 알기는 어렵다. 평소 자신의 몸 상태에 예민하거나, 임신을 많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라면 5주 차쯤에는 임신이 됐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생리가 평소보다 늦어진다거나 몸에 조금씩 임신 반응들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초음파를 통해 작은 아기집을 발견할 수도 있다.


피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 임신테스트기를 사 왔다. 종류별로 여러 개를 사 와 모두 해 보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명한 두 줄. 드디어 세 번째 보는 두 줄이었다.


임신 소식을 주변에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다.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된 책과 태교에 관한 책도 샀다. 그런 책들과 인터넷 검색을 하며 출산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아보았다.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새 순이 돋아나고, 푸릇푸릇한 봄기운이 온 천지에 감돌고 있었다. 숨을 들이쉬면 멀리서 흙냄새가 났다. 피부에 와 닿는 바람도 한 결 부드러워진, 영락없는 봄 날이었다.


기대와 설렘 속에 2차 피검사 날이 찾아왔다. 피검사에 앞 서 담당의를 만나 초음파부터 확인했다. 그 날은 임신 5주 차가 되는 날이었고, 드디어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다소 들뜬 마음으로 초음파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조금씩 의사가 당황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자신은 조금 당황했을지언정 나에게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나 역시 이미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기집이 아직 보이지 않는데요, 1차 때 수치가 좀 낮은 편이어서 그럴 수도 있어요. 보통은 수치가 1,000 이상이 돼야 아기집이 보이거든요. 다음 주에 한 번 더 확인해 봅시다."


2차 때 내 임신 수치는 1차 때에 비해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1,000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 걸 거라고, 다음 주에는 꼭 아기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검색을 해 보니 나 같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5주 때 보이지 않았던 아기집이 6주에 가서야 보인 경우가 꽤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주를 불안 속에서 지내며, 제발 어떤 불행한 일도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담당의와 나는 일주일 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지난주는 임신 수치가 많이 높지가 않아서 안 보일 가능성이 있었고요. 이제 오늘이 진짜 중요한 날인데.. 한 번 확인해 봅시다."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 하고 초음파 화면을 지켜보았다. 나 만큼이나 의사도 긴장하고 있었다. 신중히, 찬찬히, 샅샅이 자궁 내를 살펴보았지만 그 날도 아기집은 보이지 않았다.


"흠. 자궁 벽은 상당히 두꺼워져 있는데... 여기 작은 게 하나 보이기는 하는데요, 이걸 아기집으로 볼 수 있을지는 확실치가 않아요."라고 말하며 내게 작은 초음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그곳에 희미하게, 아주 작은 동그라미 하나가 보일 듯 말 듯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 초음파 사진을 소중히 받아 들었다. 그리고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하염없이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내 아기. 여기 숨어있는 거니? 그렇게 물어보았다.


3차 피검사 결과 당연히 임신 수치는 1,000이 넘어 있었는데 그런데도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조심스럽게 최악의 결과도 예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뚜렷한 두 줄이 보이는 임신테스트기, 희미한 초음파 사진, 임신 출산 백과사전, 여러 종류의 태교 책들과 함께 봄의 색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핀 목련과 개나리는 이미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고, 남 쪽 지방에서는 벚꽃 소식이 들려왔다.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4차 피검사 날도 아기집은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임신이라면 임신 7주차에 접어든 상태였다. 그러나 초음파 상태는 지난주와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임신 수치는 이미 5천을 넘어서 있었지만 의사는 그 수치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했다. 아마도, 배아가 착상을 시도하다가 도태된 것 같다고, 그 희미한 동그라미는 아기집 흔적인 것 같다고 했다. 아기집도 없는데, 내 몸은 임신이 된 줄 알고 계속해서 자궁벽을 두껍게 키우고 있었고, 임신 호르몬도 더욱 열심히 분비해 내고 있었다. 의사는 더 두고 봤자 의미가 없다며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다. 소파 수술 날짜다. 이 대로 계속 두면 내 몸에 좋지 않다고 했다. 지난번 1차 때의 '화학적 유산'의 경우는 하혈과 함께 자연스레 유산이 되었다면 이번에는 두꺼워진 자궁벽과 아기집 흔적을 모두 긁어내야 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계류 유산'인 것이다.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차 창으로 눈부시게 쏟아지던 따스한 햇살을 기억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던 여러 종류의 꽃 봉오리들을 기억한다. 제법 햇살이 뜨거워 히터를 켜지 않았음에도 차 내부의 온도가 후끈 달아올랐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운전을 하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던 나를 기억한다.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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