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 어느 날의 단상

by 옥민혜

아이들 등원을 시키고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본다. 정면에 보이는 거실 창으로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가 보인다. 딱 하루만 이렇게 아무도 없이 혼자 있어보고 싶다. 대다수의 엄마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자유'라고.


오랜만에 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글 틈틈이 드러나는 작가의 고급진 문체와 유식함에 매료된다.


"엄마, 빨리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등원 길에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으며 큰 아이이가 말했다.

"가을? 왜?"

"낙엽을 밟고 싶어서요"

등 하원 길에 매번 큼지막한 낙엽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녀석. 주머니 속에서 바싹 마른 낙엽을 다음날 등원할 때 다시 꺼내어 길가에 솔솔 뿌려대던 녀석. 어린이집에서 올 해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어냐고 물으니 아이는 고민도 없이 '낙엽을 밟았던 일'이라고 대답했단다.


이제 계절의 변화도, 4계절이 존재한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된 것이리라. 봄에는 꽃향기를 맡고, 나비를 쫓으며. 여름에는 매미 소리를 듣고, 가을에는 낙엽을 밟으며,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타며. 그렇게 사계절의 축복을 맘껏 누리며 자라는 아이들. 올해는 원도 한도 없이 진짜 겨울처럼 춥고 눈도 많이 와서 너희에게 제대로 된 겨울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


다시 낙엽을 밟을 수 있는 가을이 오면 너희는 또 얼마만큼 자라 있을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아기와 어린이 사이를 오가는 너희들. 너희에게서 문득 어린이의 모습을 엿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단다. 다시 가을이 올 때쯤엔 또 어떤 말들과 생각으로 나를 감동시킬지 기대가 된다. 그래도 우리 다시 봄이 올 때까지는 지금의 이 겨울을 마음껏 누리자. 아직 어린이라기보단 여전히 아기들인 너희를 더 힘껏 사랑하고 싶다.

이전 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