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앞바다에는 사이가 좋은 삼 형제 섬이 있다. 크기가 고만고만 한 세 섬은 모두가 무인도이다. 제주도 시인 김용길은 <서귀포의 섬>이란 시에서 "삼 형제가 머리에 흰띠 두르고 어깨동무하며 하루에도 수천 번씩 물굽이 뛰어넘고 물살을 걷어차며 줄넘기를 한다."라고 동심을 노래하였다. 세 섬은 제주도 신화에도 등장한다. 제주도를 창조한 신이 어느 날 화가 나서 한라산을 뽑아 바다로 던졌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 섬을 모아 범섬 위에 문섬을 엎어 놓고 그 위에 섶섬을 올려서 백록담을 메꾸면 한라산이 원래대로 완성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서귀포 바다에는 이들 섬 외에도 넙치가 납작 엎드려 있는 것처럼 생긴 지귀도와 서귀포항에서 새연교로 이어지는 새섬그리고 하루에 두 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서건도가 있다. 하지만 삼 형제 축에는 끼지 못한다. 나는 삼 형제섬 중에서 새끼섬이 딸린 문섬이나 남성적 느낌의 범섬보다는 여성적 느낌이 물씬 나는 섶섬을 제일로 좋아한다. 볼일이 생겨 서울에 길게 머무르게 될 때도가장 먼저 생각나고 그리운 건 바로 섶섬 풍경이다.
섶섬은 서귀포 집에서 제일 잘 보이는 섬이다. 문섬과 범섬은 나무와 건물에 가려 반쯤만 보이기에, 창 밖을 내다볼 때마다 자연스레 온전한 섶섬에게 눈길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날마다 하루에도 수차례 눈을 맞추는 사이다 보니 정이 들었던 것일까. 나는 섶섬의 변화에 누구보다도 예민해져서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곤 한다.그렇게 모아 온 섶섬의 사진만 수백 장, 문득 섶섬의 지나온 날들이 궁금해지면 갤러리를 들여다본다. 마치 때마다 찍어서 모아둔 증명사진처럼 고이 간직된 섶섬 사진을.
섶섬의 아침 해돋이 풍경
구름이 피어오르는 섶섬 풍경
<그림 1> 섶섬이 보이는 숲길
매주 일요일 오후, 보목에서 민화 수업이 끝나면 나는 홀로 소천지 숲길을 걷는다. 올레길 6코스에 속한 이 길은 나의 제주 숲길 첫사랑이다. 보목의 펜션에 장기 투숙을 하며 서귀포에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매일 아침 고즈넉한 숲길을 걸으며 행복해마지 않던 숲이다. 새소리와 파도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애완견 푸르내와의 추억까지 담긴 이 숲길은, 우람한 해송이 반기고 바다 바위로 둘러싸인 백두산 천지를 닮은 소천지를 품는다.
하루는 대학 후배 수*씨가 보목으로 놀러 왔다. 후배는 남편과 함께 오랜 해외여행을 끝내고,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국내를 돌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 제주도를 스타트로 이미 표선에서 1년 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같은 제주 하늘 아래 산다고 해서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으니 맘먹고 벼르지 않으면 얼굴 보기가 힘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함께 밥을 먹고 우리는 해송이 반기는 숲길로 들어섰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소천지를 지나고 돌담이 쳐진 바닷가 외길로 접어들었다. 길 양쪽의 나무가 서로 만나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다. 12월부터 피기 시작한 감국은 발 밑에서 작고 노란 얼굴을 내밀며 우리의 발길을 경쾌하게 이끌었다. 몇 발짝 더 나아가자 바다 쪽으로 시야가 갑자기 트였다. 짜잔, 섶섬이 코앞에 등장했다. 숲길에서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지점에 당도한 것이다. 후배가 우리의 그림자를 카메라에 담았다. 오후 햇살에 늘어진 그림자가 나의 그림 속으로 들어와 하품처럼 길게 누웠다. 섶섬이 보이는 숲길, 내 마음의 고향은 언제나 섶섬 풍경이다.
섶섬이 보이는 숲길 풍경
<그림 2> 문섬과 `소라의 성’
서귀포 삼 형제 섬 중에 나의 첫 인연은 문섬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서귀포를 여행했던 사람 중에는 아마도 정방폭포 근처에서 식사 때가 되어 우연히 들렀는데, 범상치 않은 건물 외관과 문섬 풍광에 놀라고 음식 맛에 한 번 더 놀라서, 지금도 '소라의 성'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90년대 중반에 '소라의 성'을 처음 만났다. 친구네와 함께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유람하던 어느 여름날, 서귀포를 지나다 눈에 띈 상호에 이끌려 문섬이 바라보이는 식탁에 앉았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지중해를 만나기 전이었지만, 분명 서귀포 바다가 훨씬 더 아름다울 거라고 장담하였다. 섬의 이름마저 문(moon)이라니, 낭만의 극치라고 치켜세웠다. (사실은 일본인들이 산호가 아름다운 문섬에 모기 문(蚊)을 붙여 제주인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또 전망에 버금가는 해물탕 맛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각의 신세계였다. 그 후 아쉽게도 다시는 맛볼 수 없었지만, 마음 속 영혼의 수프로 간직한 채 그 맛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주인의 병환으로 문을 닫게 된 '소라의 성'은 한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제주올레 본부를 거쳐 지금은 서귀포시에서 북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주상절리가 발달한 절벽 위 훨친한 야자수 사이로 아찔하지만 위풍당당한 성채는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은 현무암과 하얀 회벽이 대조를 이루며 제주의 뿔소라를 닮은 유려한 곡선미가 대단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래로는 소정방 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며 투명하게 바다로 흘러들고, 앞바다에는 문섬이 그림처럼 둥둥 떠 있다. 가끔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문섬과 '소라의 성'은 그렇게추억을 소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