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임에도 불청객 한파가 들락거렸다. 움츠러든 나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읽다가 만 데이비드 호크니의 신작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를 다시 펼쳤다. 이 책의 원제목은 <Spring cannot be cancelled>이다. 80이 넘은 노화가는 혹한이 지속될지라도 봄은 취소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한국어 번역본은 너무 강한 어조를 순화시켜 평범한 한글 제목을 달았다. 나는 `봄’이라는 단어 하나에 꽂혀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설 연휴즈음 광화문 교보로 나가 두꺼운 책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던 것이다.
호크니는 현존하는 화가 중 그림 값이 두 번째로 비싸다. 2019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의 호크니 전시는 몰려드는 관람객들로 인해 우리나라 전시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호크니의 행보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코로나 기간 동안 프랑스 북서부 해안 노르망디의 그랑드 쿠르라 일컫는 집에서 새로운 드로잉 방식을 시도하며 왕성하게 그림을 그렸다. 봉쇄된 천국 그랑드 쿠르에서 호크니는 우리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명확한 깨달음과 함께 코로나19 시대를 힘들게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림으로 커다란 위로를 전하였다.
"세계는 아주아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알아채기 위해서 열심히 그리고 자세하게 보아야 한다." p.122
책에는 호크니의 최근작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매일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다. 코로나라는 여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과 마주했을 때, 80세가 넘은 고령의 예술가가 택한 주제는 바로 ‘봄’이었다. 상황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시간은 흐르고 봄은 오기 마련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혹독한 겨울은 봄을 잉태한다. 나는 호크니의 새로운 그림 속에서 봄은 반드시 오리라는 희망을 보았다.
서귀포 매화원의 봄 향기
<그림 1> 튤립 한 다발
민화 아뜰리에에서는 계속 진도를 나갔다. 나는 서울을 오가느라 진도가 더뎠지만, 조금씩 따라잡았다. 초급반의 마지막 작품인 책가도의 본을 뜨고 아교포수와 고화처리를 하며 순지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작은 그림을 그렸다. 꽃이 가득 담긴 화첩에서 나는 난이도 중급의 튤립을 골랐다. 한겨울의 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그림으로라도 먼저 봄을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튤립은 나의 꽃이라 말할 수 있다. 젊었을 때 친구들은 서로의 이미지를 꽃으로 비유하곤 하였다. 젊음을 꽃피우던 시절이었으니서로가 자연스레 꽃으로 다가갔으리라. 제일 먼저 대학 때 같은 서클의 남자 친구가 나를 튤립이라고 불러 주었다. 그렇게나는 늘 튤립이나 칸나, 사루비아 등으로 비유되었다. 붉은 꽃의 공통적인 해석은 아마도 정열이 아닌가 싶다. 내 젊은 날의 결코 감출 수 없었던 열정을 친구들은 이미 눈치를 챘던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서 색은 퇴색되고 삶의 방향도 달라졌지만, 어찌 됐든 내 삶의 근간은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지는 순지에 비해 작업이 까다로웠다. 판넬에 직접 장지를 붙이고 나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 본을 뜨는 방법도 달랐다. 본의 뒷면에 4B 연필을 칠하고 뒤집어서 판넬에 대고 볼펜으로 다시 선을 그어야 했다. 먹선을 긋는 것보다 윤곽선이 덜 또렷해서 색을 칠할 때 애를 먹었다. 또순지보다 물감이 잘 번져서 아차 하는 사이 주변으로 색이 녹아들어 당황스러웠다. 그만큼 붓질도 조심스러웠다.
나는 먼저 꽃잎 색을 만들었다. 빨강 대신 핑크를 선택했다. 이젠 나의 튤립도 색깔이 많이 온화해진 느낌이다. 두세 송이는 보라색으로 변화를 주었다. 도톰하고 날렵한 잎은 약엽(연두)과 녹청에 호분(흰색)과 황토, 대자(고동)를 섞어가며 다양한 초록을 표현해 보았다. 한 송이 한 송이 꽃이 피어나고, 한 잎 두 잎 잎사귀가 든든하게 받쳐주자 신부가 들어도 좋을 것 같은 화사한 튤립 한 다발이 완성되었다. 내 마음에 그득하니 봄내음이 번졌다.
내 마음에 봄을 선사한 튤립 한 다발
<그림 2>춤추는 수양매화
서귀포에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은 매화다.
사실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는 꽃들이야 여럿 있지만, 자고로 매화만큼 기품을 지니며 인기를 누리는 꽃도 드물다. 매화는 꽃도 예쁘지만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향기의 그윽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깊다. 한낮의 햇살이 거두어지는 저녁 시간, 매화는 그제야 은근한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번잡한 낮 시간에는 시각으로 눈길을 사로잡다가, 시야가 어스름해지면 후각으로 매혹할 줄도 안다. 법정 스님은 향기를 듣는다고 하여 문향(聞香)이라고 표현하였다. 향기마저 들을 수 있는 경지는 또 얼마나 고매한가.
2월이면 매화가 만개한다. 내가 자주 찾는 걸매 생태공원에는 매화가 가득 피어나는 매화원이 있다. 다양한 식생을 관리하는 이 공원은 솜반천에서 시작된 용천수가 천지연 폭포로 흘러드는 계곡 옆으로 조성되었다. 공원의 한편에 자리한 매화원은 2월이 가장 바쁘다. 서둘러 봄을 맞이하려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분주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화원의 꽃향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나서야, 겨우내 닫아걸린 마음의 빗장이 스르륵 풀리곤 한다.
그렇게 마음의 빗장이 열리면 서둘러 천지연으로 달려간다. 매화원의 매화는 가지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으며 꽃잎이 홑겹인 청매화와 백매화로 구성되어 있다면, 천지연에서는 가지가 땅을 향해 늘어지고 꽃잎이 여러 겹인 수양매화가 자란다. 연못가에 달랑 세 그루가 있지만, 그 존재감은 매화원을 능가한다. 아름답게 늘어진 가지마다 어젯밤 한파에 함박눈이 내린 것처럼 소복하게 쌓인 꽃송이가 풍성하게 봄내음을 듬뿍 뿜어낸다.천지연은 서귀포항으로 흘러들고 그 물가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오리 떼가 평화롭다.
수양매화는 나무의 모양새가 무척 특이하다. 몸을 S자로 비틀며 춤을 춘다. 한쪽 다리를 무릎까지 올리고 한 발로 서서 팔을 쭉 하늘로 올렸다가 다시 유연하게 축축 늘어뜨리며 동작을 취한다. 그렇게 흥겹고 우아하게 혹한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봄의 기운을 들이켠다. 그러다 생의 절정에다다르면 온몸으로 기쁨을 노래하며 탄성을 지르듯 꽃이 팡팡 팝콘처럼 터지는 것이다. 나의 봄맞이는 이렇게 천지연에서 절정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