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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벚꽃 순례

제주일상 그림일기 18

by Lara 유현정



바야흐로 제주는 벚꽃의 계절이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봄비가 봄을 재촉했나 보다. 지난주 비행기도 뜨지 못할 정도의 강풍과 폭우가 이번 주 청명한 하늘과 낮 19도의 기온을 선사했다. 제주도의 벚꽃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기지개를 켜며 만개하기 시작하였다. 귀포 시내는 삽시간에 벚꽃 세상이 되었다. 동안 꽃봉오리가 굳게 닫혀 있어 개화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꽃들이 맘먹으니 순식간이다. 성미 급한 신록도 함께 어우러졌다.


벚꽃은 봄의 절정에 화사하게 피어난다. 그래서일까 마치 꽃들의 연예인처럼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차지한다. 남녀노소가 벚꽃을 사랑한다. 그리하여 짧디 짧은 생을 마감하고 비바람에 속절없이 꽃눈이 날리면, 버스커버스커의 탄식 어린 벚꽃엔딩이 봄날이 간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러나 금은 노땡큐다. 그저 절정의 순간을 길 뿐.


딸아이는 벚꽃을 무척 좋아한다. 코로나 이전엔 부산으로 진해로 심지어는 일본으로까지 벚꽃을 찾아다녔다. 올해는 어쩌겠는가. 애완견 호두를 데리고 제주로 날아왔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복닥거리며 지내게 되었다. 우리는 제주도의 벚꽃 명소를 검색하며 계획을 짰다. 매일 동네 공원으로, 틈틈이 멀리 벚꽃 순례를 떠나기로 하였다.




<그림 1> 벌새와 벚꽃 놀이


나는 매일 아침 정모시 공원 산책을 즐긴다. 원은 용천수가 솟아나 계곡을 이루며 주변으로 나무들이 우거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올레길에서 살짝 비켜간 공원이라 인적이 드물어 고즈넉하다. 물가 벤치에 앉아 정방 폭포로 흘러드는 맑은 계곡물을 바라보면, 번잡했던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근처에 살고 있는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씨도 이 공원을 자기 집 정원처럼 즐긴다는 얘기를 들었다. 러더니 작년엔 이곳 하영 올레길에 포함켰다. 하영 올레는 서귀포 도심을 걷는 세 갈래 길이다. 그중에 하나가 정방시 공원과 자구리 바닷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오후, 우리는 정모시 공원으로 소풍을 나갔다. 공원은 주말인데도 사람이 없었다. 서귀포 사람들은 무척 부지런하여 휴일 낮이라 할지라도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덕분에 우리는 공원을 독차지하고 벚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깔았다. 런두런 얘길 나누며 차를 마시 샌드위치를 먹었다. 기가 무릉도원이니 꽃구경한다고 멀리 떠날 것도 없었다.


앗, 벌새다!

우리는 벌새를 발견하고 다 같이 소리를 질렀다. 벚나무에서 꿀을 빨던 벌새들이 기감을 느꼈는지 다 같이 포로롱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원 안에는 진달래 느낌의 짙은 핑크색 벚꽃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하얀 벚나무엔 꿀벌만 모여드는, 아무래도 핑크색 벚꽃 꿀이 더 달콤한 모양이다. 벌새를 놓쳐 아쉬워진 우리는 벤치로 자리를 옮겨 조용히 기다렸다. 한 마리가 먼저 날아들자 가까이에 있던 벌새들 모여들었다. 나무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작은 벌새들이 식도락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벌새는 른 손가락만 한 크기의 몸으로 연신 날개를 털며 벚나무 가지를 옮겨 다녔다. 가지가 흔들리는 곳엔 영낙없이 벌새가 숨어 있었고, 다양한 자세로 몸을 움직이며 꿀을 빨았다. 꽃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누워서 꿀을 빠는 녀석도 있었다. 부리가 빨대처럼 길고 뾰족했다. 몸통은 연두색이고 날개는 갈색이며 눈은 물고기 눈처럼 생겼다. 작아도 육안으로 식별되는 벌새가 너무 신기했다. 귀여운 벌새 가족과 함께 누린 정모시 공원의 봄날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정모시 공원, 벌새와 함께 나눈 봄날


<그림 2> 제주시 벚꽃 순례


화요일은 근래 드물게 날이 화창하였다.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한라산을 넘는 516 도로는 아직 봄소식이 까마득했지만, 성판악을 넘어 제주시로 내려가자 가로수의 벚꽃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도가 낮아질수록 벚꽃은 만개를 향해 질주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제주대 사거리에서 제주대 정문에 이르는 벚나무 길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산 아래라 아직은 좀 일렀지만 나무가 우람하여 반쯤 만개한 벚나무 터널이 볼 만하였다. 금없이 제주대를 다니고 싶다며 딸아이는 서 잠시 머물고 싶어 했다. 리는 커피와 함께 길가 가게에서 파는 토스트를 나눠 먹었다. 벚나무 아래서의 달콤한 브런치였다.


아아, 별도봉!


우리는 제주대에서 곧장 별도봉으로 향했다. 제주시에 볼일이 한 건 있었지만 꽃구경에 뒤로 밀렸다. 나는 작년부터 마음에 품게 된 별도봉 다시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올랐다. 첫눈에 반해버린 별도봉은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오로지 이 오름 하나 때문에 서귀포에 사는 내가 제주시 부러할 정도였다.


우리는 오현 고등학교 뒤에 차를 두고 산책로로 들어섰다. 별도봉의 동남쪽 방향으로 햇살이 부시게 쏟아졌다. 날마다 이 따스한 기운을 받고 만개한 벚꽃이 오름을 환하게 뒤덮고 있었다. 우리는 북쪽으로 해안을 산책할 수 있는 장수로를 먼저 걸었다. 동백나무 길엔 아직 동백꽃이 싱싱하게 달려 있었다. 길가에 떨어진 동백은 난간 위에 고이 모셔져 나그네를 환영였다. 고개마루에 애기업은돌을 지나 내리막길로 들어다. 오른편 제주항 주변으로 푸른 바다가, 왼편으론 벚나무 군락이 펼쳐졌다.


해안길을 완주하고 별도봉 정상으로 올랐다. 벚나무 윗가지를 전정하여 시야를 확보한 덕에 주변 풍광이 시원하다. 동쪽으로는 원당봉, 서쪽으론 사라봉, 남쪽으로 한라산, 북쪽으로 제주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전망만 멋들어진 게 아니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벚나무 꽃배를 타고 갑판에 앉아 있는 듯, 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듯, 꽃멀미가 날 정도였다. 별도봉은 아래서 봐도, 뒤에서 봐도, 위에 올라 내려다 봐도,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이러하니 내년 봄을 또 기약할 수밖.


실컷 놀고 나서 배가 고파진 우리는 대통령 부부도 다녀갔다는 맛집을 찾아가 배를 채웠다. 그리고 볼일을 보러 되돌아 가다가 우연히 제주시 전농로를 지나게 되었다. 우와, 주가 자생지라는 왕벚꽃 가로수 이네. 싸, 그냥 갈 순 없잖아! 너무도 유명해서 언젠가는 가봐야지 했던 곳인데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봄을 만끽하며 햇살을 듬뿍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주대와 별도봉에 이어 전농로 왕벚꽃까지 눈에 가득 담은 꽃잎의 개수만큼 가슴속에 행복이 켜켜이 쌓여갔다.


별도봉 벚꽃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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