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ra 유현정 Jun 25. 2023

날개는 끝도 없이 자라나고

<실화소설 4>  순발력 백단의 김비야


버스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새벽 2시가 도록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버스회사조차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여러 날이 흐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동이 틀 때까지 나타나지 않은 버스의 요금을 메일로 환불 요청하자, 그런 사실이 없다며 환불해 줄 수 없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뭐 이런 허술한 회사가 다 있담." Y는 투덜거리며 할 수 없이 버스 티켓을 끊은 국내의 카드사에 환불을 요청했다. 상황 설명과 증거 메일을 받은 C카드사는 그레이하운드에게 소송을 걸었다. 다행히 승소를 해서 한 달 후쯤 환불을 받았다.


아무튼 H2는 한국에 있는 Y와 실시간으로 락을 취했다. 다음 버스는 새벽 6시에 있었다. H2는 상황판단이 빨랐다. Y와 의논 끝에 그 자리에서 6시 티켓을 다시 끊었다.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우왕좌왕하던 다른 아틀랜타행 승객들도 차츰 밤 버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새벽 버스를 타려고 마음먹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미 버스가 만원이었던 것이다. 이틀 후에나 자리가 난다고 하였다. 다들 일정에 큰 차질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H2는 발 빠른 대처로 새벽 6시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와하까에서도 H2의 대처는 남달랐다. 공항에 막 도착하여 숙소로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항은 작고 아담하였다. 여러 도시에서 관광객을 싣고 온 작은 비행기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승객들은 비행기 트랙을 내려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였다. 가늘고 기다란 선인장이 가로수를 대신하여 길가에 즐비하게 서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아담한 공항 청사 안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열기를 식혀 주었고, 중앙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연말 시즌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멕시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키 높은 의자 위에는 젊은 여인이 앉아 있고, 늙수그레한 구두닦이가 구두에 코를 박고 있었다. 한산한 듯 복작거렸다.


와하까는 멕시코시티와 달리 우버가 없었다. 택시 외에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보였는데, 문제는 택시를 기다리는 줄이 뜨거운 와하까의 오후 햇살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Y와 K가 낙담하고 있는 사이, H2 공항에 일행을 데려다주는 승용차를 향해 냅다 달려 나갔다. 그리곤 운전자와 잠시 인사를 나누더니 우리를 향해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운전을 하는 젊은이는 미국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어서 H2와 얘기가 잘 통했다. H2는 헤어질 때 그와 인스타 친구를 맺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행진을 보려고 와하까 시내에 나갔을 때였다. Y는 병원을 찾아 링거를 맞았지만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이었다. 식당에서 시킨 멕시코 요리가 입맛에 맛질 않아 기운이 없었다. 그런 Y를 위해 H2는 택시를 잡았다. 숙소까지는 짧은 거리였지만, 그 사이 차의 상태와 운전수의 양심을 파악하였다. 내리면서 바로 전화번호를 얻은 H2는 날 이후 차를 렌트한 것보다 더 쾌적하게 와하까의 여행을 안내하였다. H2의 눈썰미와 순발력과 기지는 여행을 할 때 주로 발휘되었으니, 한비야의 후예 김비야가 틀림없었다.  


와하까의 추억들


어쩜 타이밍이 이토록 절묘할까. 

그날은 우여곡절 끝에 H2가 아틀랜타행 버스를 탄 날이었다. K는 발에 깁스를 한 채 친구 C를 만나러 종로로 나갔다. C는 젊어서 애틀랜타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친구였다. K는 C의 연락을 받고 솔직히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서 오신 것보다도 반가웠다. 아주 오랜만에 잠시 귀국한 C를 절대 그냥 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애틀랜타에는 한국 영사관이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더구나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시작점이기도 하니 산행이 시작되는 4월까지는 H2가 집과 일자리를 얻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Y도 마음이 급했다. 남편의 친구 C를 통해 H2에게 물건을 전할 참이었다. 크고 무거운 물건은 언감생심이었지만, 작고 가볍고 꼭 필요한 물건들은 인편에 부탁할 참이었다. 일단 여권과 현금을 넣을 복대부터 샀다. 복대가 없어서 돈과 카드와 여권을 배낭에 넣고 다니다가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던가. 또 산행을 시작하게 되면 필요하게 될 물품과 비상약을 다. 만일을 대비한 항생제는 K가 아는 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다. 작은 꾸러미가 마련되었다. 꾸러미를 들고나가 친구를 만난 K는 젊은 날의 우정이 아직 시들지 않았음을 알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일이 다시 꼬이고 말았다. 꾸러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 것다. 이건 또 무슨 도깨비장난 같은 날벼락이란 말인가. Y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K는 어쩐지 어젯밤 친구에게 꾸러미를 건네주며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고 실토하였다. 그토록 든든하던 친구가 이젠 허풍쟁이가 되어 동아줄이 지푸라기로 변신해 있었다. C는 어젯밤 취기에도 분명히 꾸러미를 가슴에 안고 전철을 타고 집에 갔다고 기억하였다. K에게 큰소리까지 치며 호언장담을 해 놓은 상황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뒤늦게 알고 보니 범인은 C의 노모였다. 치매가 시작된 노모가 장롱 깊숙이 숨긴 것을 어렵게 찾아냈다고 하였다. C도 십년감수한 모양이었다.


꾸러미는 이틀 후 C를 통해 H2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 H2는 Y의 카드로 결제한 에어비엔비 숙소에 머물며 영사관에서 여권 재발급을 신청해 놓고 바로 C를 만났다. C는 지난밤 늦은 귀국에 몹시 피곤했고, 또 여러 날 사업장을 비운 탓에 무척 바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초면인 자리에서 당장 삼촌으로 둔갑한 C는 필요한 건 모두 얘기하라고 하였다. H2에게 든든한 보호자가 생긴 것이다. 아무쪼록 비빌 언덕을 하나 갖게 되다. 아주 작은 친절이라도 급하고 궁한 사람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커다란 은혜가 되는 법이다. 




그나저나 Y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젊은 여자애가 6개월이나 걸리는 산행을 혼자서 하겠다니 앞이 깜깜했다. 텐트와 코펠에 식량까지 짊어지고 하루종일 오르락내리락 걷는다는 건, 체력이 약한 Y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산장을 만나지 못하면 야생에서 밤을 보내야 할 텐데, 곰이라도 만나면 어쩔 것인가. 또 아프고 다치거나 강도라도 만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H2의 이런 배포와 담대함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Y는 문득 H2가 6살이었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눈이 하얗게 덮인 스키장에서의 일이다. Y와 K는 그 당시 겨울이면 스키에 빠져 살았기에, 친구네 가족과 함께 어린 딸들을 데리고 스키를 타러 다. 어른들은 자유 스키를 타고, 아이들은 강습을 시켰다. 그런데 함께 점심을 먹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6살짜리 꼬마 둘이 사라진 것이다. 사색이 되어 찾고 있는데, 두 녀석이 슬로프에서 여유 있게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H2가 친구 꼬드겨 같이 리프트를 탄 것이었다. 손이 짧아 안전바를 내리지 못해서 아래로 떨어질까 봐 몸을 뒤로 딱 붙이고 올라갔다고 하였다. 어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인이 되어서는 자전거에 꽂혀 또 Y의 애간장을 태웠다.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나가 한강으로 진입해서 낙동강까지 달리는가 하면,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 바다를 보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달랑 1인용 텐트를 짊어지고 일본의 규슈 섬도 돌고 왔다. 이뿐인가. 혼자서 호주의 해안을 돌겠다고 또 다시 길을 나섰다. 한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어마무시한 대륙을 종단하겠다니, 자전거 마니아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었다. H2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에서 페달을 밟으며 혼신의 힘으로 도시와 도시를 이었다고 회고하였다. H2의 날개는 끝도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


올해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끝나면, 아프리카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멕시코 여행 중에 Y는 이집트에서부터 남아까지 함께 종단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Y는 저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H2가 여행 동반자로서는 누구보다도 훌륭하고 완벽하지만, 어떻게 그 체력과 야망을 따라잡을 것인가. 야생에서의 긴긴밤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Y에겐 그저 역사와 문화, 예술이 살아있는 유럽이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체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야 근심이 조금은 덜어질 것 같았다. Y는 인터넷 서점에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한 사람들의 책을 서핑하기 시작하였다.



 


이전 03화 나는 꿈을 이룬 것 같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