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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l 02. 2023

마음의 소리에 귀를 열고

<실화소설 5> 수호천사가 안내하는 김비야


나를 부르는 숲


Y는 빌 브라이슨책을 좋아다. 여행작가로서  만큼 유머가 넘치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다시 그의 책을 집어 들었다. 어느 날 애팔래치아 숲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젊은 날 유럽 대륙을 함께 여행으나, 알코올 중독자 된 친구 카츠와 길을 나섰다. 중년의 두 남자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숲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는 코미디보다도 재밌다. 산행 도중 파국에 이를 뻔했던 우정이 구사일생으로 회생된 장면은 압권이었다. 비록 완주는 못했지만, 그가 들려주는 방대한 지식과 자연의 웅장한 모습 독자를 숲으로 어들기에 충분하다.


Y는 엠마 게이트우드 알게 되었다.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라는 책에 등장하는 그녀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주한 최초의 여성이다. 1955년 67세의 나이로 길을 나 배낭 대신 자루를 메고 걸었다. 오죽하면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권유를 받았을까. 하지만 엠마는 방울뱀과 허리케인의 공습, 추위와 배고픔, 무릎의 고통, 때로 들개와 고슴도치가 찾아오곤 하는 야영지의 밤을 견뎌냈다. 결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전체를 혼자 걸어서 한 번에 완주한 첫 번째 여성이 되었, 남녀를 통틀어 이 길을 세 차례나 완주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엠마완주 후 유명 인사가 되었다. 지금도 도보여행자들에겐 ‘애팔래치아의 여왕’라는 전설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녀가 체험한 트레일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잊히고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되살려내는 계기가 되었다. 11자녀의 어머니로서,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다 늦게 이혼한 여성으로서, 그녀는 삶의 무게에 물짓고 무릎 꿇는 대신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숲으로 . 자신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인생을 승리로 이끈 불굴의 의지와  담대한 용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Y는 을 읽는 내내 트레일을 따라 걷는 엠마의 숨결이 들려오는 듯하였다. 숨소리는 비록 거칠지만, 거기엔 살아있음의 환희가 녹아 있다. Y는 엠마를 통해서 H2의  앞날을 걱정하는 대신, 도전을 일삼는 인간의 열망을 이해하게 되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트레일 표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열악한 시절 60대 할머니도 세 번이나 완주한 산길이었다. 즘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만큼, 난관도 그만큼 줄어들었으리라.


Y는 H2가 미국서 대학을 다니던 어느 여름, 혼자서 산티아고 길을 완주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였다. 프랑스 남부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설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던 것이다. 편안한 보금자리를 박차고 고생길로 떠난 이들은 고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들은 모두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면의 실한 목소리 경청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데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H1과 H2는 어려서부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마치 수호천사가 곁에서 속삭이는 듯 행동하였다. 아마도 어느 정도 Y의 교육방침의 영향 아니었을. Y는 두 딸아이를 방목하듯 기르며 뭐든지 스스로 찾아가게 하였다. 흥미를 보이 권유를 하, 몰두하면 아낌없이 지원을 하였다. 하지만 공부 학원이나 과외는 자신이 하고 싶다고 요구할 때까지 보내지 않았다. 또 다니다가 싫증을 내면 바로 그만두게 하였다. 교육은 부모가 욕심을 내면 관계만 악화되기에, 기다리는 것이 미덕라고 생각하였다. 욕심도 스스로 내는 것이 정답이었다.


Y의 두 중에 H1은 5살 때부터 그림에 몰두했다. 그림에 대한 욕심과 상상력이 남달랐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그리면서 보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자연스레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만화 잡지에 그림을 보내잡지에 실리, 같이 수록된 언니들과 서신을 교류하며 관계를 확장하였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전국적인 규모의 만화 동인 행사 '코믹월드'에 참여하였다. 행사가 있는 주말이면 지방의 만화 친구들이 Y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Y는 밥을 챙기고, 남편 K는 아이들과 만화책을 행사장까지 실어 나르느라 분주하였다.


H1은 어린 나이에도 경제력 쏠쏠하다. 코믹 행사에 나갈 때마다 만 원짜리 지폐를 작은 상자에 가득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주로 만화를 그려서 을지로 인쇄소에서 책으로 제본하였고, 소품으로 책갈피라든가 만화 캐릭터를 코팅하여 팔았다. 행사 전날 밤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코팅기에서 나오는 그림을 가위로 잘라주곤 했던 것이다. 렇게 번 돈으 H1은 언니들을 따라 일본에 나가서 트렁크 가득 일본 만화를 사들고 들어다.


 H1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림에서 만화로, 만화에서 디자인으로, 디자인에서 예술 경영으로, 예술 경영에서 웹소설가로서의 진로를 바꾸며 경력을 쌓아갔다면, H2의 내면의 소리는 방향이 달랐다. H2는 자신의 방에 세계지도를 붙여 놓고, 다녀온 나라들을 핀으로 표시해나가고 있었다. 아직은 부모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어 고작해야 미국과 유럽 그리고 동남아의 휴양지가 전부였지만, 자신의 작은 품 안에 언젠가는 펼치고 싶은 날개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15살에 H2는 거역할 수 없는 마음떨림을 마주하였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진로를 결정할 때였다. Y와 K는 다소 엉뚱한 H2를 제도권 교육이 아닌 좀 더 자유로운 대안학교를 보내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H2는 시골의 대안학교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바쁜 맞벌이 부모를 대신하여 홀로 인터넷 서핑을 하며 진로를 모색하였다. 그러다  국무부에서 주관하는 공립학교 교환학생 제도 찾아냈다. H2 바로 강남의 유학원을 찾아, 지금은 ELTiS 바뀐 SLEP TEST를 받고 시험에 통과하였다. 렇게 홀로 모든 것 준비떠난 유학의 길이었다.




H2는 잠시 여권 재발급을 위해 애틀랜타에 체류하며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빌 언덕이 있는 아틀랜타는 조금은 안정된 조건이었지만, 자신이 바라는 삶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지만, 가슴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인생이란 어차피 오늘 하루를 사는 일이었다. H2는 결국 마이애미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도시였지만, 왠지 끌리는 것들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다녀갈 수 있는 바다가 곁에 있었고, 도둑보다는 천사들이 훨씬 많이 사는 천국이었다.


한국에 있는 Y와 K는 H2가 애팔래치아 산행을 시작하기 전 몇 달만이라도 친구 C의 도움을 받아 편히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H2는 자신의 선택이 곧 법이었다. 멕시코 여행을 떠나기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안정된 직장을 그만둘 때도 말릴 수는 없었다. 세계 최대 호텔인 MGM 계열사에서 고객 컨설팅을 맡으며 인정을 받았지만, H2는 내면에끊임없이 보채는 소리를 었다. 상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떠나라는 마음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동차까지 모든 짐을 처분하고 배낭 하나만 달랑 멘 채, 도보로 미국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입국하였다.


그러나 6개월을 꽉 채운 멕시코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간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도둑을 만나 빈털털이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여권을 다시 발급받기 위해 아틀랜타를 방문했는데, 운명의 신은 H2를 다시 마이애미로 데려다 놓을 모양이었다. H2는 재발급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여권을 이제 막 삼촌이 된 C에게 찾아서 마이애미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리곤 다시 마이애미행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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